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22>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22>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3.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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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로
가족의 희로애락 담긴 소우주였다네...

발갛게 달아오른 작은 질그릇

화로는 불이 생긴 이래 오랫동안 인간들이 사용해온 생활도구 중 하나이다.

추운 겨울철 난방을 위해 온돌을 덥히는 아궁이에 장작 불을 때면 타고 남은 불을 담아 실내로 옮겨 보온하던 그릇이 ‘화로’다.

화로는 동이처럼 속이 옴팡하고 받침으로 다리를 만들어 그속에 불을 담았는데 보통 질그릇으로 만든 것이 많이 사용됐으며, 무쇠로 만든 화로와 놋쇠화로, 청동화로, 도자기화로 등이 있었다.

화로는 숯불을 담아 재를 덮어 불씨를 보존하는데 쓰이기도 했다. 재를 덮은 화롯불은 감자, 고구마, 밤을 구워 먹기도 하고 불을 헤쳐 된장을 끓이거나 부녀자들이 바느질 할때 ‘인두’를 달구어 다림질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 사랑방에선 남정네들이 모여 새끼를 꼬고 짚신을 삼으며 담뱃불 쏘시개로 쓰이고 때로는 길가던 나그네가 추위를 피해 집에 머물러 손을 녹이고 가기도 했다. 눈 내리는 겨울밤이면 조무래기들이 화롯가에 모여 앉아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듣던 것도 모두 화롯불에서 연유됐다.

화로는 겨울철 부자든 가난뱅이든 어느 가정이든지 꼭 있어야할 생활도구였는데 부잣집은 놋쇠화로, 도자기화로 등 고급스럽고 우아한 것이 많았고, 가난한 집은 흙을 구워 만든 질그릇 옹기화로가 대부분이었으며, 더러는 무쇠화로를 사용하기도 했다.

옛날 새며느리가 들어오면 시어머니는 불씨가 담긴 화로를 물려주고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키게 했다. 며느리가 불씨를 꺼트리면 야단 맞는 것은 물론이요, 가문의 수치로 여길 만큼 불씨 보존을 중요시 해온 것이다.

화롯불은 겨울철 방안의 찬공기를 덥히는 난방용이기도 했지만 가족들이 모여앉아 불을 쬐면서 정을 나누던 도구라서 가족들중 겨울철 밖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화롯불에서 몸을 녹였다.

해질녁 저녁밥을 짓거나 쇠죽을 끓인 후 화로에 새로 땐 불을 가득 담아 방에 들여놓으면 방안의 찬공기가 사라지고 훈훈한 기운이 도는 것은 물론 된장 뚝배기를 올려 놓으면 보글보글 끓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져 곧들어올 저녁밥에 군침이 돌고, 늦은밤 화롯불에 묻어 잘구어진 고구마를 꺼내 공부하는 손자녀석 입에 넣어주고 흐뭇해 하던 할머니의 사랑도 모두 화롯불에서 묻어났다.

눈보라 휘날리는 추운 겨울날 나그네가 깊은 산골 오두막의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서 하룻밤 묵기를 청하면 주인은 손님을 맞아 아랫목에 앉기를 권하는 것이 우리네 옛인정이었다. 또 불을 담아 다독거렸던 화롯불을 헤쳐 언손을 녹이고 하면 최상의 대접으로 여겼다.

고대광실 대가집은 청동화로에 백탄숯불을 담아 밑불이 오래 갔으나 잡초에 콩깍지를 땐 불은 밑불이 오래가지않아 나무를 땐 숯을 모아 두었다가 화로에 묻어 불씨를 보존하는게 보편적이었다.

지금은 가스난로에 전기난로, 심지어 냉·난방 온풍기가 집집마다 돌아가는 세상을 살아 화롯불의 정서도 살아지고 따스한 정이 없어졌다.아, 옛날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저 그리움만 높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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