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만한 사과…이삭 팬 보리…"이럴 수가"
대추만한 사과…이삭 팬 보리…"이럴 수가"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1.12.12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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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속출 … 내년 큰 피해 우려 농가 망연자실
(위로부터)올가을 사과가 채 썩기도 전에 새로 열매 맺은 사과 알곡이 여물다 만 보리 꽃 피운 야생 영춘화 12월의 매화꽃
꽃핀 식물도 수두룩…'꽃 없는 봄' 예상되기도

12월에 사과 열매가 대추만하게 달리고 밭에서는 보리 이삭이 익은 채 누렇게 변해가고 있으며 각종 꽃들은 저마다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먼 나라 일도 아니고 미래의 일도 아니다. 동짓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믿기지 않는 현상들이다.

◇ '이변 중의 이변' 속출

동지를 일주일여 앞둔 12일 오전 괴산군 청천면 고성리 김응성씨(52)의 사과 과수원. 1만2000㎡(약 3600평)의 과수원 한편에 심어진 수백 그루의 '홍로' 사과나무 가지에 무언가 달려 있다.

자세히 보니 얼마 전 피었다가 진 듯한 마른 꽃들 사이로 작달막한 사과 열매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다. 그중에는 대추만큼 자란 것도 있다. 가지 중간에는 아직 썩지 않고 매달려 있는 사과가 지난 가을의 흔적으로 남아 있건만, 겨울이 채 오기도 전에 돌연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은 것이다. 사과 과수원을 조성한 지 1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이변이다.

주인 김씨는 "10월 중순쯤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11월까지 피더니만 이젠 열매까지 맺었다"며 "이런 현상은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주로 중생종인 홍로 품종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변은 인근 후평리에서도 확인됐다. 다 자라지도 않은 보리가 이삭을 내밀어 일부는 이미 알곡이 영글기까지 했다. 요 며칠 사이 기온이 영하 10도 가까이 내려가면서 지금은 누렇게 말라비틀어져 있지만 얼마 전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이삭이 자랐단다.

마을 주민 이진의씨(58)는 "지금이 어느 때인데 보리가 이삭을 피워 알곡을 맺느냐"며 "눈으로 직접 보고서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혀를 내둘렀다.

야생화를 비롯한 각종 꽃에서도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충청타임즈 취재팀이 처음 발견해 학계에 알려진 국내 유일의 영춘화 자생지(괴산군 청천면 소재)에서는 수백 그루가 계절을 잊은 채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듯 잔뜩 부풀어 있는 가운데 일부는 이미 꽃을 피운 상태다.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어암리 등에서도 봄꽃인 매화와 지면패랭이꽃(꽃잔디)이 꽃을 활짝 피웠다가 최근 몰아닥친 추위에 잠시 꽃 피우기를 멈춘 상태이며, 목련과 목백합(튤립나무) 등도 꽃망울을 잔뜩 부풀린 채 개화직전 상태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 이상고온이 원인

각종 식물들의 이 같은 '철없는 개화 및 결실' 현상은 최근까지 지속된 가을철 이후의 이상고온과 적절한 일조시간이 맞닥뜨려져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립중앙과학관 이상명 박사(자연사연구실)는 "지난 10~11월 유례없는 고온현상이 찾아온 데다 일조시간도 봄철 개화기와 비슷해 식물들이 계절을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 내년 봄 '큰 피해' 우려

문제는 내년 봄에 큰 피해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이미 꽃을 피워 열매를 맺은 사과나무는 물론 역시 겨울이 오기 전에 이삭을 내밀었거나 이삭을 머금은 채 겨울을 맞고 있는 보리 등 작물들은 내년 봄 개화기 또는 결실기가 와도 꽃이 안 피거나 이삭이 패지 않는 '무화 무결실(無花 無結實)'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괴산 청천의 사과 농가인 김응성씨는 "이미 꽃이 핀 사과나무는 내년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며 "그런 나무가 수백 그루나 되니 피해가 수천 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탄했다.

꽃 피우기가 이미 진행된 다른 꽃 식물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봄이 와도 꽃을 피울 눈(꽃눈)이 없어 '꽃 없는 이상한 봄'이 예상된다.

올가을 사과가 채 썩기도 전에 새로 열매 맺은 사과 알곡이 여물다 만 보리 꽃 피운 야생 영춘화 12월의 매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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