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사랑
어긋난 사랑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2.0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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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지나보면 사소한 말과 행동이 남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줄 때가 많다.

남에게 준 상처는 기억하지 못해도 받은 상처는 뼈에 새겨, 두고두고 서운해 하는 것이 사람이고 보면 쇠털같이 많은 날, 자잘한 일상으로 채워진 삶을 생각해보면 누구나 하나쯤 진심을 담아 사과를 건넬 사람이 있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날카로운 말로 살을 에고 미운 감정으로 쓰라림을 더하는 일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2000년 5월 부모를 토막 살해한 명문대생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보면 어머니와 다투던 날, 어렸을 때부터 혼나거나 매를 맞은 것을 기록한 일기책을 내밀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라도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 어머니는 매몰차게 거절했고, 그는 잔인한 방법으로 부모를 살해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보며 아무리 작은 상처도 덮어지거나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에는 고등학생이 체벌을 일삼고 명문대 진학을 종용한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성적을 고친 것이 들통이 날까봐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을 보고 과도한 입시경쟁이 낳은 비극이라고 입을 모았다.

과도한 어머니의 집착이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만들었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시간차를 두고 있지만 두 사건 모두 그 내면에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에게 투영하려는 부모의 이기심이 자리 잡고 있다.

명문대를 다니고 있는 동생의 부모 살해 소식을 접한 큰아들이 '난 동생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라는 말에 의문을 품은 저자는 여러 차례의 면회를 통해 부모 살해라는 사회적 공분 이전에 바탕에 깔려 있는 심리상태와 가족 상황을 파고 들었다.

영부인이 되는 것이 꿈인 어머니는 해사를 나온 전도양양한 사람을 남편으로 선택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꿈과는 상관없이 퇴역한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두 아들에게 병적 집착을 보였다. 특히 병약한 둘째에게는 가혹하리 만큼 냉정하게 질책하며 마음의 병을 키웠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대학생의 무죄를 주장한다.

별거 중인 여자가 서울대 법대를 보내기 위해 자녀에게 매질과 욕설을 하며 교육에 천착하는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두 사람의 심리 상태는 자식사랑을 빌미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보호막이 되어야 하지만 때론 폭력을 합리화하고 아이를 위한다는 편협한 생각에 능력 밖의 것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한 폭력이며 아동 학대이다.

두 사건의 이면에는 자식을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와 반대로 얼마 전 영국 법원이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을 목 졸라 살해한 어머니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린 사건이 영국 데일리 메일에 보도됐다.

열한 살 된 아들을 코트 허리띠로 목을 졸라 살해하며 '천국에서는 누구도 자폐증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며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기도했지만, 일찍 구조돼 목숨은 건졌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으로부터 아들을 데리고 나와 지극정성으로 돌봤다는 이유와 이미 자식을 잃음으로 충분한 죄의 대가를 치렀다는 이유로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는 늘 흔적이 남는다. 사랑이 추억이 아니라 패륜이라는 낙인과 후회만이 그 자리를 채운다. 자녀에게 미안하다는 말,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 봐주는 일, 12월 끝자락에 우리 모두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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