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의 어제와오늘 <36>
무심천의 어제와오늘 <36>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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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은 개발 열풍에 시멘트 속으로… '도랑의 추억' 아련
구릉을 거슬러 올라가니 실개천 같은 물줄기 이어지는데 이번 36회에서는 무심천 지류중 마지막 지류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교서천은 지난 30~32회에서 다뤘듯이 우암산 방송 송신탑 인근에서 발원해 상좌골을 거쳐 충북도청~상당공원~청주상의뒤~방아다리~운천1교로 이어지는 '물길 1'과 용화사 뒤 우암산 골짜기에서 발원해 옛 수동사무소~청주수협뒤 교서천~방아다리로 이어지는 '물길2'에다 청주대예술대 위 우암산 골짜기에서 발원해 안덕벌을 거쳐 우암동을 통해 흐르는 '물길 3'이 있다. 따라서 이번 36회에서는 청주대예술대 위 우암산 골짜기에서 발원해 예술대 뒤편으로 작은 도랑을 그리다가 안덕벌 주택가를 거쳐 옛 청주연초제조창~내덕7거리~우암동주택가~충북택시공제조합~우정아파트~교서천으로 이어지는 '물길3'을 답사했다. 잘알다시피 물길의 발원지를 찾으려면 하류에서 상류쪽으로 물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시작되는 곳을 찾을 수 있다.
김운기 편집위원과 함께 안덕벌 좁은 길을 따라 청주대예술대를 거쳐 우암산순환도로를 건너 우암산 골짜기로 들어섰다.

6월 중순을 맞은 우암산은 짙은 녹음으로 우거져 한낮인데도 골짜기를 어둠컴컴하게 뒤덮고 있어 물줄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암산순환도로를 건너 우암산으로 들어서니 구릉이 나타나고 이곳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실개천 같은 물줄기가 이어지다 끊어지곤 한다. 아, 이곳이 발원지겠구나 싶어 김 편집위원께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물길3'은 우암산 기슭의 작은 골짜기에서 물빛이 비치기 시작해 구릉에서 작은 폭포를 만들고 우암산순환도로 아래 터널을 거쳐 청주대 예술대 뒤편으로 작은 도랑을 이뤄 흘러가고 있었다.

구릉은 약 300~400평은 됨직한데 오래전부터 무속신앙의 기도터로 이용된 듯 여기저기 양초부스러기며 음식물 잔여물들이 눈에 띄었다.

도로에서 20여m정도 떨어진 것 같은데 앞에 숲이 우거져서 차량들의 통행 소리가 아득히 들리며 왠지 모르게 조용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10여m나 됨직한 깎아지른 암석절벽이 빙둘러쳐진 이곳에 우암산 위에서 모인 물줄기가 작은 폭포를 이루며 쉼없이 떨어지고 있어 신기하기만 했다.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 내려가보니 용화사쪽에서 진행하는 도로와 안덕벌~청주대 예술대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에서 불과 몇m 떨어지지 않은 곳, 도로 바로 아래에 파이프 2개를 박은 곳에서 시원스레 물줄기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좀전에 봤던 그 물줄기는 지하로 스며들어 이처럼 파이프를 통해 물길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에 가로세로 2m쯤 되는 터널이 있고 이 터널을 통해 예술대 뒤편으로 물도랑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중년 2명이 물병을 들고 이곳으로 내려와 물을 받기 시작한다. "물맛이 괜찮으냐"고 물으니"깨끗하고 시원하다"고 한다. 파이프에 입을 대고 몇모금 마셔보니 무색무취, 물맛이 괜찮은듯 했다.

물길을 따라 안덕벌로 들어서니 갑자기 도랑이 없어졌다.

찾아보니 예술대 뒤편으로 해 안덕벌 주택가로 이어진 도랑이 모두 시멘트로 포장돼 도랑이 없어져 버렸다.

낙담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할머니 한분이 지나가신다. 선뜻 다가가 "할머니 이곳에 오래사셨어요"하고 물으니 올해 71세인 서혜옥 할머니는 "이곳에서 산지 40여년 된다"고 한다.

"도랑이 없어졌다"고 하니까 10여년 전까기만 해도 '순정순대'와 스피드 PC방'건물사이 주택가로 폭이 약 7~8m정도의 도랑이 있었는데 도로가 좁아 사람이나 차량통행이 어렵다고 하니까 청주시에서 도랑을 시멘트로 복개해 도로로 이용했다. 서 할머니는 도랑인지 아닌지 구분도 안되는 포장도로 밑을 가리키며 "지금도 이곳에 물이 흐를껴" 하시고는 가던길을 재촉한다.

복개된 도랑은 옛 연초제조창옆을 거쳐 내덕7거리로, 다시 국민은행내덕동지점 뒤편으로해서 우암동 주택가 사이로~향군로 충북택시공제조합옆으로~무심천동쪽 둑방아래 '충주순대'까지 폭 20여 m의 도로가 되어 그밑으로 소리죽여 흐르고 있었다.

김 편집위원은 "옛날 옛 청주연초제조창 위편에 도랑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 정씨들이 많이 살아 '정산골도랑'이라고 불렸으며, 나뭇짐을 지고 우암산을 내려와 정산골 도랑에서 발을 씻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서 할머니는 "복개가 되기전에는 도랑물이 맑아서 빨래도 하고 발도 씻고 했는데="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랑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연하천은 도시발달에 따른 개발이란 명분아래 사람들의 손에의해 자연의 모습을 잃고 어둠속을 흐르는 죽은하천으로 변하고 말았다.

서울의 청계천 복원만 자랑할것이 아니라 청주시내 곳곳을 흐르는 도심하천을 복원해 빛이 들게 한다면,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게 한다면 또다른 청주의 명물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멘트로 뒤덮인 교서천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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