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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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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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분만
나도 임신할 수 있었으면/나도 여자처럼 만삭이 되어/아이를 낳을 수 있었으면/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젖꼭지를 물리고/창 밖에 떠오르는 보름달을 쳐다보며/평화롭게 젖을 한번 먹여보았으면/젖을 먹이다가/아기의 눈동자에 눈부처가 되어 비친 나를/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다가/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을 흘릴 수 있었으면/내가 사랑하던 여자가 걸어가는/저승길을 함께 걸어가다가/잠깐 포옹하고/다시 헤어져 돌아온 오늘밤/그녀가 잠시 머물렀던 영안실이 있던 병원의/야간분만 붉은 표시등을/오랫동안 바라보다가/그토록 엄마가 되고 싶어했던/사랑했던 그 사람처럼/나도 엄마가 될 수 있었으면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사랑하는 여자는 임신도 못 하고, 만삭이 되어 아이도 못 낳고, 보름달처럼 가득한 젖을 물리지도 못 하고, 아기 안에 살고 있는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 하고 숨을 거둔다. 눈물 많던 그녀는 빨간 야간분만 표시등에서 잠시 깜박거리다가 하늘로 간다. 그녀가 젖을 물리고서 "아가야, 내가 엄마란다"라고 하는 말이 그렁그렁하다. 그러나 시인이여, 그대가 엄마 되는 게 그리 쉽다면, 사랑을 먼저 데려가지 않았으리. 그대의 몸 안에 살고 계신 어머니 손을 한 번 잡아보시게. 그러면 그녀의 영혼이 만져질 것이네. 너무 멀리서 엄마를 그리워하지 마시게. 죽음은 떠남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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