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김장축제가 가져다 준 것
두번의 김장축제가 가져다 준 것
  • 김현진 <충북종합사회복지센터 부장>
  • 승인 2011.11.27 2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올해 우리 집은 겨우 식구들이 먹을 만큼인 100포기 정도만 김장을 했다. 배추를 다듬고, 절이고, 무와 골파, 갓을 다듬고, 마늘까지 빻고 나니 해가 저물었다. 둘째 날 이른 새벽 아버지의 움직임이 자연스레 기상 알람이 돼 절인 배추를 씻고, 배추가 짜네 안 짜네 서로 간을 보면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그렇게 배추 양념 소를 넣고 또 한바탕 시비가 인다. 이번엔 맵다 안 맵다, 짜다 싱겁다, 이 정도는 돼야 한다, 소금을 더 넣어야 한다 등 사공이 많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면 둘러 앉아 삶은 돼지고기로 김치 덕에 매워진 속을 달랜다. 식구들이 함께한 이틀간의 김장은 ‘우리 가족의 작은 축제’가 됐다.

그런데 올해는 축제를 한 번 더 치렀다. 지난 23일 새벽, 내리는 비에 걱정이 앞섰다. 3000포기에 달하는 대규모 김장나누기 행사가 있는 날인데 이게 어렵게 됐다 싶어서다. 부랴부랴 행사장에 달려가 보니 웅장한 KBS 로비에서 김장 준비가 한창이다. 앞선 걱정에 흔쾌히 그 넓은 로비를 내어준 KBS에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이맘때 김장나눔 행사를 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그 흔한 김장나누기를 또 하느냐, 그 김장이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냐, 다른 기부 아이템은 없느냐는 쓴소리도 듣지만, 우리 이웃에게 김장은 여전히 꼭 필요한 월동 준비 품목이다.

이번 김장나눔 행사가 더욱 뜻 깊은 것은 여럿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김장 비용을 지원하고, KBS 청주방송총국은 장소와 부대비용을 지원했다. 김장을 담그는 사람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고, 만들어진 김장은 충북의 12개 시·군 푸드뱅크를 통해 각 지역의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진다.

순식간에 KBS 로비는 김치 공장이 됐다. 여기저기 파이팅을 외치는 자원봉사자들과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한바탕 잔치를 치르는 듯하다. 그 와중에 거울을 보며 금방 고춧가루 범벅이 될 앞치마 매무새를 다지는 멋쟁이 자원봉사자도 있고, 서로 앞치마를 둘러주고 장갑을 끼워주는 유쾌한 자원봉사자들도 눈에 띈다.

직장인이지만 일부러 휴가까지 내서 참여한 사람도 있고, 교대 근무가 끝나고 퇴근길에 참여한 사람도 있다. 올해만 김장을 세 번째 한다는 한 어머니는 다음 주에 김장나눔 행사에 또 간다면서 자기를 ‘김장전문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하며 깔깔 웃는다.

KBS 노래교실에 참여했다가 김장나눔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참여해도 될까요”라고 물으면서 그 자리에서 고무장갑을 낀 어머니도 있다. 하늘색 조끼를 입은 충북사회복지협의회 연합봉사단, 노란 조끼의 적십자 봉사단, 빨간 사랑의 열매 그림이 그려진 공동모금회 봉사단, 파란조끼의 KBS 디딤돌 봉사단이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아주 멋진, 생생한 그림이 된다.

서로 낯 모르는 100여명이 너나할 것 없이 바삐 움직이며 주변의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지역의 작은 축제’ 그 자체였다.

그 모습들이 나를 벅차게 한다. 김치가 이웃들에게 전해져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벅찬 감동은 비영리 조직에서 일하는 우리들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감정이다.

이런 감동이 우리를 버티게 하고, 우리를 일하게 한다. 참 살맛나는 세상이다. 월급이 많지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힘이 그곳에 있다. 이 축제 속에, 이들 속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