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기름 바른 혀 꼬부라진 소리?
버터기름 바른 혀 꼬부라진 소리?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1.11.15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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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조카 결혼식이 있는 날이다. 큰형님을 모시고 식장으로 가는 내내 형님의 안색이 편치 않으시다. 매사 긍정적이신 분인데 큰 걱정거리가 있는 게 분명한데 선뜻 말문을 열지 않으셨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농사일을 하며 소를 10마리나 기르신다.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고 부지런한 분이다.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일이 좋으니 죽을 때까지 일하다 가시겠다는 굳은 철학을 가지고 계신다. 예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지 여쭤보았다. 다름 아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었다. 농사짓는 일과 소 기르는 일밖에 모르는 큰형님으로선 FTA를 결사적으로 반대할 수밖엔 없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는 보다 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하는 게 이득이다. 즉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 등의 대기업은 이득을 본다. 국가 전체적으론 이득이 크겠지만 농업·중소기업 등 손해 보는 분야가 있다. 

세계적인 시장개방 흐름을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농업·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이 없다는 게 문제가 아닐까 싶다. 소득 분포의 불평등을 해소하여야만 농업인이나 중소기업인들이 FTA를 이해할 수 있다. 솔직히 FTA가 통과되면 사실상 미국의 지배를 받을 게 뻔하다. FTA를 맺으면 우리 농업은 사라질 것이다. 식량 부족 문제가 발생하면 국가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크다. 

형님께서 분노한 건 정치인들의 발언 중에 있었다. 칠레에서 포도가 들어왔다고 해서 우리 포도 농가가 망하지 않았고, 미국 오렌지가 들어왔다고 귤 농가가 폐업하지 않았다며 얼마 전 배추를 초과 생산해 다 갈아엎은 적이 있는데 FTA는 오히려 우리 농업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득실을 따져야 하는 문제인데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과장하거나 감정적인 주장만 내놓는 데 있다. 어떤 주장이든 근거가 명확한 얘기면 모르겠으나 거짓 선동이 난무하다. 

초기 FTA가 진행되었을 때 농업 쪽에서 피해를 보더라도 자동차와 섬유 쪽에서 이익을 볼 것이라는 말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점점 느끼고 있다. 섬유부분은 지금처럼 중국이나 북한에 건설한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은 혜택을 보지 못하고(대부분 이렇게 생산된다), 자동차 또한 양보하고 있는 추세이다.

한·미 FTA는 절대 공정할 수가 없다. 미국과 한국의 경제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부잣집 아들과 서민의 아들이 경쟁하는 꼴이다. 물론 서민의 아들이 더 성공할 수 있으나 확률상 매우 어렵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를 해야 하는 것은 FTA를 하지 않으면 부잣집 사람들에게서 해코지를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평등한 협상이지만 안 할 수가 없는 협상이 아니겠는가.  

대기업만 이득을 보기보다는 국가의 전체적인 부(富)가 느는 것인데, 부를 어떻게 배분하느냐는, 정부가 국내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국내 총생산 증가 효과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소득 불평등 문제에 대한 점검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복잡한 이론적 혹은 정치적인 문제에 대하여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시는 형님과 대화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고차원적이다. 아는 것이 농사일뿐인 큰형님이다. 10년 전 쌀 80Kg 한 가마니에 30만원까지 했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데 쌀값은 오히려 떨어져 요즘은 18만원밖에 나가지 않는다. 

“나는 이대로가 좋아. 우리 땅에서 나는 곡식과 채소며 과일, 그리구 소 돼지 같은 축산물이 넉넉한데 왜 지랄들하고 수입을 한다는 겨?” 그러시면서 “우리말 놔 두고 무신 빠다지름 묻힌 FTA니 뭐니 혀 꼬부라진 소릴 해 쌌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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