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마을
시가 있는 마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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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되는 사과
사과를 깎다가

구멍에서 꼼지락거리며

머리를 내미는 애벌레와 마주쳤다

애벌레는 화난 표정이었다

마치 자신이 소유한 별을

누가 건드렸냐는 듯 두리번거렸다

칼을 들고 나는 망설였다

사과는 애벌레의 부엌이자 방이요

뜯어먹을 한 세계였던 것이다

(중략)

사과를 한 입 물어뜯으며

입술의 물렁함을 나는 느꼈다

그리고 장님애벌레로 변신할 필요도 없이

나의 세계가 즙을 흘리며

붕괴되는 소리를 들었다

시집 '아무 것도 아니면 모든 것인 나'(열림원)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사과를 깎을 때에는 안을 잘 들여다 볼 일이다. 그 안에서 따스한 구멍의 집을 짓고 탁란(托卵)하는 벌레의 숨소리를 들어볼 일이다. 이 세상에 목숨을 드리운 것들은 셋방살이로 살다가 허물 벗고 지나간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는 일 많다. 바람이 불면 고마운 몸짓으로 절 올리는 풀들은 아름답다. 아늑한 애벌레의 방으로 마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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