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6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6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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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고장
후치우공원

오전 10시45분 후치우(虎丘)에 도착했다. 쑤저우에서 북서쪽으로 5km 떨어진 언덕으로 춘추시대 오나라 왕 부차(夫差)가 그의 아버지 합려(闔閭)의 묘역으로 조성한 곳이다.

매장하고 사흘째 되던 날 백호(白虎)가 나타나 묘를 지켰다는 전설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후치우 입구 오른쪽에 있는 시검석(試劍石)은 오왕 합려가 천하의 명검을 시험하기위해 시험 삼아 돌을 잘랐다는 암벽으로 실제로 가운데가 둘로 쪼개져 있어 천여 년의 전설이 상흔으로 역사의 현장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오르면 넓게 펼쳐진 암반이 나타난다. 작은 바위를 두부모 자른 듯 각진 형상들이 마치 천의 얼굴을 가진 듯 다채롭게 펼쳐지고 널찍한 공간이 나타난다. 천명이 앉아서 승려의 설법을 들었다는 천인석(千人石)이다.

이곳을 지나면 몇 십장 깎아지른 암벽위로 구름다리가 놓여있고 많은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못엔 금붕어가 한가로이 노닐고 돌계단을 돌아올라 물이 솟구치는 검지(劍池)를 보면 한여름에도 서늘한 한기가 스며든다.

다리를 돌아 오르면 둥근 돌 탁자와 돌 받침의자가 놓여 있는 조그만 정자가 나타나 잠시 휴식을 취했다. 정자 앞 둥근 문이 뚫린 담장 너머로 정원의 꽃과 나무들이 오수를 즐기고 있다.

흐르는 땀방울을 식히며 합려와 부차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원한과 복수의 시간도 망각의 강과 함께 역사의 상흔으로 조용히 흐르고 있다. 오나라 왕 합려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의 기습으로 패하고 이때 맞은 화살로 파상풍이 악화되어 죽어가는 모습이 후치우의 화신이 되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 같다.

복수와 증오가 또 다른 원한과 한을 잉태하는 역사의 이정표처럼 말없이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원한에 사무친 합려가 태자인 부차에게 꼭 원수를 갚아달라는 유언을 하고 묻힌 이곳에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장작개비 위에서 자며 3년 안에 복수를 다짐하며 군사력을 강화하였다.

부차가 왕이 된지 2년 뒤 이런 소식을 들은 구천이 다시 선제공격을 했을 땐 미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부차의 군대에게 크게 패해 회계산으로 도망쳐 포위되었고 굴욕적인 자세로 항복하고 말았다. 크게 낙담한 구천은 부하들의 도움으로 복수할 것을 다짐하며 언제나 곁에 쓸개를 걸어두고 회계산의 치욕을 잃지 말자며 쓸개의 쓴맛을 보았다고 한다.

오 왕 부차와 월 왕 구천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며 복수를 다짐하며 만든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 성어는 이렇게 하여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패배한 구천은 밭에 나가 일을 할 때도 고기를 먹지 않으며 수수한 옷만 입고 다시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다. 구천이 오나라에 항복한지 5년 뒤에 부차는 제나라를 공격했고 오나라가 국력을 소비하기를 호시탐탐 기다리던 구천은 자진해서 군대를 이끌고 오나라를 도우며 부차를 안심시키고 많은 보물까지 바쳤다.

이 때 미녀 서시(西施)를 바쳐 첫눈에 반한 부차가 요사스런 그녀의 교태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게 하는 미인계를 동원하여 국력을 쇠퇴케 하여 복수를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십년이 넘게 복수를 준비한 월나라의 총 공세 앞에 항복한 부차는 마침내 자살을 하고 마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그의 부왕의 묘인 후치우에서 두 부자의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를 회상해 보았다. 이처럼 원수지간인 오나라와 월나라가 겉으로는 협력하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호시탐탐 서로의 약점을 노리는 상황을 오월동주(吳越同舟)라 하니 우리주변에서도 흔히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며 현실이기도 하다.

합려가 아끼던 보검 3,000자루를 찾기 위해 진시황제가 파놓았다는 전설이 숨 쉬는 검지를 돌아 산정으로 오르면 우측으로 15도 정도 기울어진 벽돌로 쌓은 운암사(雲岩寺)탑이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961년에 완성된 47.5m의 8각형 7층 석탑으로 현존하는 중국 최고(最古)의 벽돌 탑이다.

400년 전부터 지반 침하로 기울기 시작하여 중국판 피사탑을 연상시킨다.

탑 주변을 돌며 굽어보는 고도(古都) 쑤저우의 모습과 나무숲사이로 지저귀는 새소리, 회가루를 바닥에 뿌린 것 같은 새들의 배설물, 진귀한 남방의 새들과 새둥지들이 무수히 허공에 걸려 있어 새들의 천국에 와있는 느낌이다. 정면 계단을 내려오자 조망대와 정원이 꾸며진 마당엔 촘촘히 박아놓은 벽돌 틈으로 세월의 이끼가 푸릇푸릇 자라나고 있다. 예전에 묘 관리를 하던 사당은 대부분 관광 관리사무소로 꾸며져 있다.

주변을 감상하다 다시 탑 위로 올라와서 좌측 담장을 나오니 돌계단이 아래로 뻗어있다. 열대의 수목과 아름다운 남방의 새소리에 묻혀 계단을 내려오니 찻집 옥란산방(玉蘭山方) 현판을 단 산장이 있다. 관람객들은 새똥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며 급히 내려가고 있다. 가는 대나무 숲 사이로 푸른 하천이 흐르고 새들과 숲으로 어우러진 20ha 후치우의 공원 숲과 바닥 전체가 회벽을 뿌려놓은 것 같은 새똥들의 흔적은 새들의 낙원처럼 느껴지게 한다. /함영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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