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9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9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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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행 야간여객선
▲연꽃과 수련이 피어있고 붕어 떼들이 노닐고 있는 악비묘소 정원 연못

오후 5시25분 여객선이 강을 거슬러 항저우로 향하는 고동소리를 울렸다.

강바닥을 타고 밀려오는 훈풍이 매우 상쾌했다. 두 개의 작은 여객선을 연결하여 앞의 배가 끌고 가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여객선이다. 이틀 동안 구름에 숨어 있던 햇살이 쑤저우를 떠나는 일행에게 마지막 배웅을 하려는 듯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강 물결이 여객선의 꼬리를 물고 햇살에 번쩍인다. 오월동주의 고사가 전해지는 강 물결들이 유장하게 흐르고 있다.

하늘의 천당과 비교되었던 낙원의 도시 쑤저우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수도였던 역사의 고장, 천하에 널리 알려졌던 쑤저우의 미인들 그러나 그 명성만큼은 감동을 받지 못한 것 같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산하가 매우 아름답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하였다. 중국남방을 돌면서 중국여인보다는 한국여성들이 훨씬 세련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기대한 만큼이나 눈에 띄는 미인들을 상하이에서나 쑤저우에서 별로 볼 수가 없었다. 옛 중국인들은 쑤저우의 아내를 얻고 광저우(廣州) 음식을 먹으며 항저우(杭州)의 시후(西湖)를 바라보면서 여생을 즐기다가 죽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겼다고 한다. 쑤저우가 중국 10대 명승지로 선정된 것은 경관 보다는 옛 뛰어난 시인묵객들이 많은 시와 그림으로 이 고장의 문화와 역사를 가꾼 덕택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여행객들이 좁은 침실 칸에서 나와 난간의 손잡이를 잡고 밖을 구경하고 있다. 외성하(外城河) 강을 타고 항저우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종종 뱃고동 소리를 들으면 중국대륙에는 운하가 상당히 발달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황토물이 햇살 너머로 끝없이 물결치며 이어지고 있다.

저녁 햇살이 젖어들 무렵 쑤저우 교통 여유공사의 직원이 방문하여 내일 아침 7시부터 하루 동안 항저우를 탐방하는 패키지 투어 상품을 제안하였다. 중국인의 투어에 참여하면 값싸고 효율적인 답사를 할 수 있어 흔쾌히 계약을 했다.

선박 직원이 방문하여 아침 식사도 미리 주문하여 놓았다. 생각지도 못한 여행상품들이 기다리고 있어 항저우에서의 여행은 좀 더 순조롭게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항저우 행은 배를 이용하다보니 숙소문제도 저절로 해결될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과 단체여행에 참여하게 되면 시간과 경비가 절감되고 항저우의 많은 유적지들을 볼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다만 한 평 남짓한 선실 공간에 2단으로 된 4개의 침상이 마주보고 있는 비좁고 허름한 잠자리를 제외하고는 편안한 느낌이다. 우리는 4인 1실의 이 침실을 65위안에 샀다.

강폭은 조그만 선박 4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있는 넓이다. 2층 칸에 누워 선창 밖을 보면 수많은 상선과 마을들과 숲이 지나가고 있어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시속 20-30킬로 정도라 중국 서민들의 모습을 눈에 담기에는 그만이다.

한려수도의 쾌속선이나 금강산 관광 때 탔던 봉래호의 쾌적한 쿠르즈 선상보다는 시설과 분위기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지만 중국 서민들이 애용하는 이런 배의 분위기가 오히려 내겐 더욱 정감 있고 흥미를 느끼게 한다. 금강산 봉래호가 워커힐이나 신라호텔이라면 지금 타고 있는 영암호는 1960년대 우리나라 변두리 여인숙이다. 그러나 이 작은 여객선 선실이 훨씬 더 정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생생하게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175cm인 내 키로 침상에 누우면 머리에 주먹하나 겨우 남을 수 있는 공간이다. 준비한 햄버거 하나에 음료수 1병이면 저녁은 만사 OK이다. 일행 셋이서 좁은 선실 가운데 놓여 있는 탁자에 둘러 앉아 저녁 9시부터 조촐한 파티를 시작했다. 집에서 준비해 온 고추장과 멸치를 안주로 상하이 맥주를 마시며 이국의 정취에 흠뻑 취했다.

항저우(杭州.항주)의 일일 탐방코스

날씨가 흐렸다.

새벽 5시 하늘은 엷은 운무로 덮여있고 강변은 물기에 젖어 있다. 시원한 바람이 새벽을 가른다. 새벽 2시 요란스런 경적소리에 깨어 밤새 뒤척이며 생각에 잠겼다. 배는 서서히 공장지대를 벗어나고 있다. 쑤저우에서 142km 벗어난 지점에 있다는 푯말이 보인다. 배는 이미 항저우 지역에 들어서 있었다.

아침 식사로 밥 한 공기 2위안, 콩과 돼지볶음 1접시에 5위안으로 값싸게 아침을 해결했다. 아침 6시50분경 항저우에 도착했다. 13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1인당 140위안 하는 항저우 1일 탐방코스에 참여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였다. 대부분 쑤저우에서 배편으로 새벽녘에 항저우에 도착한 중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이루어지는 패키지 투어다.

항저우는 저지앙(浙江.절강)성의 성도로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수도였으며 이웃나라인 오(吳)나라 수도인 쑤저우와 오월동주의 고사를 만들어 낸 쌍벽을 이루는 도시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시후 북서쪽에 있는 웨먀오(岳廟)였다.

▲ 애국 충정의 대명사로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악비 장군묘서 입구

122l년에 건립된 이 묘소는 여진족이 세운 금(金)과 싸웠던 민족의 영웅인 남송 장군 악비(岳飛)를 기념하기 위한 묘소다. 입구에 악왕묘(岳王廟)라는 현판을 보고 장군의 무덤에 왕(王)자를 쓴 이유를 물었더니 왕의 칭호가 아니라 애칭으로 존경하여 그렇게 부른다 하니 악비장군이 중국인들에게 영웅적인 인물로 각인되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묘 우측 담을 지나면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쓴 큰 글씨가 담 벽에 쓰여져 있다. 향나무로 잘 조성된 묘원과 정방형의 연못이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악비기념관이 있다. 악비기념관 주변 연못에는 연꽃과 수련이 활짝 피어 있고 붕어 떼들이 무리지어 노닐고 있다.

대전 안에는 높이 4.5m의 악비장군의 늠름한 좌상이 말없이 관람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연보와 일대기가 좌우 기념관에 설명되어 있으며 그의 높은 충절을 기리고 있다. 악비가 작사했다는 난감황 악보가 매우 인상 깊게 다가섰다. 커다란 좌상 위에는 민족의 빛(民族之光)이라는 선명한 글씨가 눈길을 끈다.

대전 밖 정원에는 악비 부자의 묘가 조성되어 있고 무덤 앞에는 악비를 투옥하고 독살한 간신 진회(秦檜) 부부와 그들의 심복들이 두 손이 뒤로 묶여서 무릎을 꿇고 있는 4개의 철상(鐵像)이 있다. 지금도 악비장군을 모함한 간신 상들을 향해 침을 뱉거나 때리는 사람들이 있어 지나간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 애국충정으로 온몸을 던진 민족영웅에 대한 중국인들의 각별한 사랑이 담겨 있는 사당이다. /함영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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