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17 >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 17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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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湖南)성 성도(省都) 창사(長沙)
천년 지킨 연못위 햇살 한줌 푸르름 한다발

▲송 태조 개보 9년 (서기 976년)에 건립되어 송 진종이 이름을 붙인 위에르슈위엔. ⓒ 충청타임즈

오후 3시 8분 2박 3일간의 장자지에 답사를 마치고 창사(長沙.장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곳이 그 옛날 무릉원 장자지에의 골짜기에서 세상과 인연을 끊은 채 근심 없이 살아가는 마을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 속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세상과 단절된 이 골짜기는 인간세상에서 볼 수 없는 비경(秘境)과 자연의 숨결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이곳에 살던 옛 사람들은 온갖 애욕과 탐욕이 넘치는 인간세계와 단절하고 살았을 것이다. 장자지에는 닫혀있던 천상의 공원이 인간세계의 열린 공간으로 선경의 베일을 벗어 놓은 계곡이다.

중국 사람들의 억양은 매우 높아 열차 안은 시장판 같다. 차창 가에 펼쳐지는 시골마을 풍경 너머로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옆 사람을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다. 한마디로 소음공해다. 그러나 승객들은 여전히 지루한 장거리 기차여행을 카드나 화투를 치면서 웃고 떠들면서 즐겁게 보내고 있다.

30분쯤 달리자 중국내륙 산악지방의 높은 암벽 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냇물과 작은 들녘과 숲 속에 흩어져 있는 농가마을의 황토 집 벽돌담과 옥수수 밭, 논들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1시간 정도 달려 시골의 작은 간이역에 도착하였다.

왁자지껄하게 내리고 타는 사람들 속에서 자거나 담소하거나 카드 치는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면 난장판처럼 요란한 승객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삶의 활력을 느낄 수 있다. 철저하게 예의범절을 따지는 서구인들이나 일본인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낡은 건물 사이로 페인트칠이 벗겨진 집들이 스산하게 다가오는 시골마을들을 보면 중국의 내륙 시골마을들은 대도시의 발전 속도에 비해 아직도 매우 낙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기차여행에서 얻은 교훈은 그들의 생활문화에 적응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인내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디기 힘들다는 점이다. 10시간 정도의 거리는 우리나라의 2-3시간 정도로 생각해야한다. 20시간 이상이 되어야 장거리 여행 축에 끼인다. 완행열차인 경우는 되도록 타지 않는 게 좋다. 장자지에에서 창사까지 5시간 20분 소요되는 이 열차가 완행일 경우는 13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이다. 20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여행하기에는 너무나 지루하고 힘들 것이다.

그래서 서로 웃고 떠들고 카드놀이를 하는구나 생각하니 공해 속에 떠 있는 공간처럼 느껴지던 열차 칸이 그리 불쾌하게만 여겨지지가 않았다. 봉지에 싸온 음식물이 냄새를 풍기거나 옆 사람이 좀 시끄럽게 굴어도 웬만하면 참고 이해하며 함께 참여하여 대화하는 넉넉한 인정미가 어쩌면 훨씬 더 인간미가 넘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인간은 자기가 살아온 방식을 기준으로 모든 사물과 타인을 평가하려 들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검은색 기와와 처마선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위에루슈위엔의 내부 ⓒ 충청타임즈

여행이야말로 그런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좋은 길잡이라 생각된다. 세계의 여러 지역을 답사하면서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공유해서 자신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자연스럽게 허무는 것이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아닐까.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들리는 마을마다 분위기와 모습이 매우 다양했다. 산간지역과 평야지역의 분위기가 전혀 다르거니와 7월인데도 한쪽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추수를 하는가 하면 다른 편에서는 모심기를 하고 있는 화중(華中)지역의 2모작 풍경이 퍽 낯설게 느껴졌다. 평야지대로 나올수록 집들이 깨끗하고 길은 아스팔트로 많이 포장되어있다.

여승무원이 수시로 장대걸레로 객실바닥을 닦았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강사부(康師傅) 컵라면 보다 이(李)라면을 역무원이 파는 것으로 보아 각 성이나 지역마다 상품선택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잠깐 얘기를 나누다보면 이웃처럼 친하게 대화하는 스스럼없는 모습에서 낙천적인 대륙의 기질을 느끼게 한다. 앞좌석에 앉은 아주머니는 한국에 대해 가장 인상 깊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의 김치와 축구, 패션감각을 꼽고 있었다.

저녁 8시 33분 창사역에 도착하여 9시 35분에 장도작점(長島作店)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장자지에서 안내를 해주었던 오휘씨에게 추천받은 호텔인데 깨끗하고 다른 대도시에 비해 가격도 저렴했다.

위에루슈위앤(岳麓書院.악록서원)이 자리잡은 문향의 도시 창사(長沙.장사)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창사는 비교적 방문 예정지가 많지 않아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창사는 3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후난(湖南) 지역의 성도이며 교통의 요지다. 후난 여행은 창사를 기점으로 한 여행과 중국 최대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는 장자지에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후난성은 중국의 남부 창지앙(長江) 중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동팅호(洞庭湖.동정호) 남쪽에 있다고 해서 호남(湖南)이라고 부른다. 후난성의 기후는 아열대 계절풍 습윤 기후에 속하며 추운 기간이 짧은 편이다. 창사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방문할 곳은 위에루산(岳麓山)과 위에루슈위앤(岳麓書院)이다. 마왕뚜이한무(馬王堆漢墓.마왕퇴한묘)와 텐신거(天心閣)도 가 볼만한 명소다.

위에루슈위앤으로 가는 길에 먼저 시내 투어를 하고 싶었다. 북쪽으로 버스를 타고 도심을 통과한 후 강을 건너 위에루산 풍경구를 지났다. 12시 30분경 후난사범대학에 도착했다. 주변일대는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15분쯤 걸어 후난대학(湖南大學)에 도착했다. 1976년에 건립한 마오쪄둥의 커다란 동상 뒷 켠으로 뻗어있는 가로수 우거진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천년학부(千年學府)라는 현판이 붙은 위에루슈위앤이 나타난다.

중국 중점문물 보호단위로써 송 태조 개보(開保) 9년(서기 976년)에 건립되어 송 진종(眞宗)이 “岳麓書院(악록서원) ”이라는 이름을 달았다 한다. 입장료(18元)를 내고 매표소를 지나면 “岳麓書院” 현판이 나타나고 작은 뜰을 지나면 명산단석(名山壇席)이 나타나는데 현관을 통과하면 실사구시(實事求是)란 낯익은 현판을 만나게 된다. 너른 뜰 좌우로 잘 조경된 나무들과 강당이 나타나고 도남정맥(道南正脈)이란 현판아래 장문의 악록서원기(岳麓書院記)가 쓰여져 있다.

우측 좁은 문을 지나면 서원관(書院官)이 나타나는데 이곳에는 국내외 각계 저명인사 방문기념 사진과 유명인사 친필휘호나 책자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을 통과하면 가운데 석조계단 옆으로 정사각형 진녹색을 띤 연못이 좌우에 있고 정면에 3층 서원누각이 기품 있는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누각 양 옆을 에워싼 무성한 나뭇잎과 새소리가 천년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비를 맞지 않도록 사방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검은색 기와와 황금빛 처마선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좌측 회랑을 따라 들어가면 연못이 나타나는데 정원을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붉은 연꽃잎, 알 수 없는 남방의 무성한 나뭇잎들이 매미 소리에 젖어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있다. /함영덕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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