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뒷골목
  • 이영창 <수필가>
  • 승인 2011.10.2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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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지난 어느 날이었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주차장에서 이상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도서관은 청주 시내에서 판단하면 뒷골목이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역한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겠지 하며 관심 없이 생각할 뿐이었다. 나도 그 부류의 하나였다, 비 갠 쾌청한 날 아침 책상머리에 앉자마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이 함께 들어와 하는 말이었다 “출근길에 주차장에서 이상한 냄새 못 느꼈어요?” 순간 나는 ‘아아 참 그랬었지’하고는 동료 직원과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줌마들도 따라 왔다. 냄새나던 차량을 찾아 갔다. 청소하시는 분들은 “그 차 맞지요?” 하고 말했다. 어느 결에 같이 간 동료가 안을 살폈는지 깜짝 놀라며 “앗! 사람이잖아. 죽어 있잖아. 그래 죽어 있어”하는 것이 아닌가. 역시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 차량은 언제부턴가 장기 주차되어 있었던 차량이었다. 뒷골목 비밀스러운 곳. 그 많은 장기 주차 차량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 사실은 경찰에 신고 되어 시끌벅적하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 차량은 제자리에 한 달가량은 있다가 어디론가 세월처럼 없어졌고 사람이 죽었던 사실도 있었거나 말았거나 그런대로 사그라져 버렸다.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과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모두가 그렇게 마련이었다. 

사실 지금의 현실이 그렇다. 시내 골목이라고 생긴 골목은 앞골목 뒷골목 할 것이 없다. 인도를 가로막는 불법 주차는 물론이고 인도를 점령하는 노상적재가 비일비재하다. 아예 인도를 사람 다니기 불편하게 점령해도 단속하는 법이 없다. 광고물도 그렇다. 전봇대나 거리마다 허름한 벽은 온통 광고판이기도 하다. 펄렁펄렁 불법이 나붙는다. 한심하다.  

언젠가. 건축도 도로의 코너에는 각을 지게 세우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하여 관리하던 시대가 생각난다. 민주화를 위해 몸 바친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게 될 말인가. 노상적재는 벌금이 얼마라고 정해지기도 했었다. 이것이 교통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던가. 교통질서는 삶의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졌다.  

지자제가 자리 잡고서 정의가 없는 민주주의가 자리하게 되었고 정통사회는 멀리 가고 보이지 않는다. 지자체라는 비생명체는 불법과 타협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나도 너를 봐 줄 것이니, 너도 다음에 봐 주면 된다.’ 그렇게밖엔 달리 보여지지 않는다. 어느 지자체고 마찬가지다. 

그렇게 한다면 지자체장 선거를 아예 없애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행정당국은 색안경을 쓰고 눈을 감는 것이다. 경찰은 또 무엇인가. 교통과가 있었는데 없어진 것일까. 불법을 단속하지 않고 타협하는 꼴이다. 그냥 슬슬 슬그머니 넘어간다. 이것이 발전하는 새 시대의 현주소이고 정의인가? 예방이 구호뿐인 것처럼 삶의 질도 구호에 그친다. 사고는 나는 대로 나고 처리는 사고가 난 후에 이루어지는 지금의 사회를 그냥 이대로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이제 지자제가 자리 잡은 지도 오래 되었다. 이대로는 아니다. 정의가 앞서가는 사회로 변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인생을 뒷골목처럼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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