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와 예멘은 못 보는 서방 
시리아와 예멘은 못 보는 서방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10.2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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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카다피의 죽음으로 리비아의 내전은 종식됐지만 이곳에선 또 다른 전쟁이 잉태되고 있다. 석유를 둘러싼 서방 강대국들의 각축이 그것이다. 비록 총성과 전선 없는 전쟁이긴 하지만 전개 과정은 치열할 전망이다. 세계 9위 산유국인 리비아의 석유 매장량은 450억 배럴로 지구 전체 매장의 3.5%에 달한다. 1200억 달러, 140조 원 정도로 추산되는 전후 재건사업도 서방이 군침을 삼키는 먹잇감이다.

리비아 이권 쟁탈전에서는 일단 프랑스와 영국이 기선을 제압하는 형국이다. 프랑스는 혁명군을 가장 먼저 합법정부로 공인하고 군사작전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전비로 2억 유로(약 3000억원)를 쏟아부었다고 한다. 63개국이 참여해 지난달 파리에서 출범한 리비아 재건회의 의장국을 맡은 것이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는 리비아 내전을 아예 ‘사르코지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미 과도정부로부터 리비아 석유의 35%를 할당받기로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과도정부를 지원한 전쟁비용만으로 보면 프랑스를 웃도는 영국도 주도권을 다툴 전망이다. 자국내 리비아 동결자산을 해제한 뒤 2억여 달러를 과도정부에 지원하고, 유럽 석유시장을 움직여 혁명군이 휘발유와 경유를 확보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나토(NATO)군의 카다피군 공습시 시칠리아섬의 공군기지를 제공했던 이탈리아도 논공행상에 본격적으로 끼어들 태세다.

미국은 수출선이 유럽에 편중된 석유보다 리비아에 대한 군사외교적 지배권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1조원 가까운 비용을 전비로 투입했고, 리비아 해외재산 동결을 풀면서 리비아 국가과도위원회에 7억 달러를 풀어주며 환심을 사 뒀다. 나토의 군사적 개입에 반대했던 중국과 카다피 정권과의 의리를 지켜오던 러시아도 뒤늦게 과도정부를 인정하며 ‘리비아’라는 식탁을 넘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의 과거사를 보면 뻔뻔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시위를 진압하고 혁명군을 공격한 리비아 정부군의 장비와 무기 중 상당량이 프랑스와 영국이 카다피에 수출한 것들이다.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카다피와 리비아를 국제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적극 후원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석유탐사권을 얻기 위해 리비아에 미사일과 방공시스템을 제공하고 군사자문단 파견을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 2월에도 영국산 시위진압 장비를 리비아에 판매하려다 문제가 되자 허가를 보류했다.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카다피의 막역지우이다. 카다피는 이탈리아 금융과 스포츠 분야에 6조원이나 투자한 경제적 은인이다. 중국의 국영 군수업체는 내전이 한창이던 지난 7월 카다피에게 무기를 판매하려다 들통이 났다.

리비아와 마찬가지로 민초들의 민주화 투쟁이 벌어지는 시리아와 예멘의 유혈사태는 외면하는 서방의 이중적 행태도 도마에 오른다. 예멘에서는 지난 2월 독재자 살레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1500여명이 숨졌다. 세습권력에 대한 시민저항이 진행 중인 시리아에서도 30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리비아에 대해선 날을 세웠던 서방이 이들 나라에서 벌어지는 유혈극은 못 본 척하고 있다. 현 정권이 자국에 우호적이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가 상정한 시리아 제재결의안조차도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로 무산됐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카다피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카이사르를 흉내냈다고 한다. “왔노라, 보았노라, 그가 죽었노라”. 카다피만 보일 뿐 ‘오십보 백보’인 시리아의 아사드나 예멘의 살레 같은 독재자는 보이지 않는 힐러리의 눈은 국제사회의 위선과 탐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한때는 친구 같았던 서방이 승전고를 울리며 쾌재를 부르는 동안 지하의 카다피는 조국을 열강의 식탁에 던져버렸다는 또 다른 죄를 뒤집어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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