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사건' 참고인 신상을 노출하다니…
'돈봉투 사건' 참고인 신상을 노출하다니…
  • 한인섭 <사회부장>
  • 승인 2011.10.1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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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증평군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법위반 사건 단서를 제공한 참고인 신상을 노출시킨 일은 선거관리 업무의 공정성을 크게 훼손한 일이다. 사건 경위를 보면 선관위 신뢰성은 물론 조사 의지 자체를 의심할 만한 일이어서 간단치 않아 보인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예비후보자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편파조사 시비도 자초했다.

이번 사건은 선관위나 수사당국이 눈을 치켜뜨고 감시하는 ‘돈 선거 의혹’이 핵심이다. 이번 일과 같은 ‘돈봉투 수수’는 정치인에게서 받은 자와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사건 당사자들의 진술이 유일한 단서이고, 증거로 채택될 수밖에 없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총선 예비후보자에게서 돈봉투를 받았다고 털어 놓은 일이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선관위에 제보돼 조사가 착수된 것인데 사건은 애초부터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갔던 게 아닌가 싶다. 선관위 담당 조사관이 참고인 조사를 통해 신분을 상대방에 알려줘도 되겠냐며 동의를 구하려 시도했다는 것 자체부터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선거과정에서 벌어지는 ‘금품수수’는 당사자 간의 은밀하게 벌어지는 일이어서 누가 문제를 제기했는지, 짐작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법사건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 ‘특정범죄’로 분류하고,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까지 제정했다.

특정범죄에 관한 형사절차에서 국민이 안심하고, 자발적으로 협조할 수 있도록 범죄 신고자 등을 실질적으로 보호해 사회를 방위한다는 게 법제정 취지이다. 그래서 선관위나 수사기관은 선거범죄에 관한 신고, 진정, 고소, 고발 등 조사·수사 단서 제공, 진술 또는 증언, 자료제출을 비롯한 일련의 행위를 보호해야 한다.

특히 누구든 선거범죄 신고자의 인적사항이나 이를 알 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줘서는 안 된다는 규정까지 만들어졌다. 재판과정에서 조사 서류가 변호인을 통해 열람이 가능한 점을 고려해 조사 서류에 인적사항 전부를 기재하지 않아도 가능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심지어 재판에 출석한 증인이 원할 경우 피고인이나 사건 관련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별도 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다. 신고자나 친족들이 보복을 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인을 콕 찍어 알려줬으니 일이 안되는 방향으로 틀었다는 시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증평군 선거관리위원회는 “당사자 동의(신상공개)를 받았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참고인 동의를 받을 일이 전혀 아니다. 동의를 받아 상대방에게 고지할 수 있다는 규정도 없다.

당초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던 당사자는 법정에 간다면 어차피 알려질 것 아니냐는 점을 고려해 동의했다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결국 사건의 단서를 제공한 참고인은 선관위를 나온 후 몇 시간 만에 걸려온 전화를 시작으로 날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뻔히 예상됐던 일이다.

금품수수와 같은 민감한 사건에서 “누가 그런 소릴 하더냐”며 반발한다고 ‘아무개가 그러더라’는 조사 방식이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애당초 규명이 쉽지 않았던 ‘돈봉투 의혹’은 엉뚱한 분쟁까지 야기해 일찌감치 물 건너 갔다.

이런 식의 조사라면 누가 선관위를 믿고 사건을 제보할 수 있겠는가. 선관위는 다소 성급하긴 했지만, 동의를 받았으니 별반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의 태도인데 일반주민이나, 내년 총선을 향해 움직이는 이들이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충북도선관위가 경위 파악에 나선 모양인데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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