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자부터 사라진다
강한 자부터 사라진다
  •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 승인 2011.10.03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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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요즘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동물이 있다. 다람쥐다. 비록 산골 숲 속이 아니더라도 도시근교의 야산과 공원, 심지어 학교운동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 다람쥐다.

계절이 가을인 만큼 그들이 먹이 모으느라 분주히 움직이기에 자주 마주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개체수 자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산행을 다녀왔거나 밤 주우러 갔다온 사람들마다 “곳곳이 다람쥐 천지”라고 말할 정도로 숫자가 많아졌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갑자기 많아진 야생 고양이 때문에 먹잇감인 다람쥐 숫자가 급감하고 있다고 각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했는데, 20년도 채 안 된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야생 고양이 천국이 아닌 다람쥐 천국이 돼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자연 생태계에는 야생 고양이만 다람쥐의 천적 노릇을 하는 게 아니다. 뱀도 있고 족제비, 오소리, 담비, 삵, 너구리도 있다. 맹금류인 올빼미와 매 무리도 대표적인 천적이다.

먹이사슬 내의 약자인 다람쥐로서는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모험일 정도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천적이다. 도토리 하나 밤톨 하나를 주워도 맘 편히 먹지 못하는 게 다람쥐다. 밤과 낮, 하늘과 땅 가리지 않고 온통 천적으로부터의 위험뿐이니 어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신세다.

그러나 어쩌랴. 먹이사슬의 법칙은 늘 약자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고 강자는 그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명과 생태계 질서를 유지해 나간다. 약자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게 자연 생태계의 논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약자인 다람쥐는 여전히 건재할까. 1990년대 중반기 상황으로는 얼마 안 가 다람쥐는 사라지고 야생 고양이만 들끓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야생 고양이의 숫자가 늘기는커녕 되레 줄어든 느낌이 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약육강식의 논리대로라면 먹이사슬의 아랫단계로 내려갈수록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거나 사라져야 할 텐데, 오히려 최하위 단계인 다람쥐는 사라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엔 그 숫자가 더욱 늘었음은 무슨 까닭일까.

거기에 더하여 국내 먹이사슬의 최상위 단계인 호랑이와 표범, 늑대, 여우가 이미 멸종된 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먹고 먹히는 힘의 논리대로라면 이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한반도 생태계를 지배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은가.

답은 간단하다. 강한 자는 사라진다는, 아니 강한 자부터 사라진다는 생태계의 법칙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하면 약한 자는 남는다는 뜻이니 결국 자연 생태계를 끝까지 유지시켜 나갈 최후 보루는 다람쥐와 토끼 같은 약자들이다.

약자는 비록 약할 망정 강자가 갖고 있지 않은 여러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 겸손함과 부지런함이다. 호랑이가 사라진 곳에선 늑대가, 늑대가 사라진 곳에선 여우가 왕 노릇 한다고, 먹이사슬의 윗단계로 올라갈수록 우쭐대고 뽐내며 게으른 습성이 있지만 약자인 다람쥐와 토끼는 힘이 없기에 스스로 낮출 줄 알고 부지런을 떤다.

둘째,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과 생명력, 번식력이 뛰어나다. 푸른 숲에서 민둥산으로, 민둥산에서 또다시 푸른 숲이 되기까지 숱한 서식환경 변화를 겪어 오는 동안 이 땅의 최상위 동물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쇠퇴한 반면 최하위 동물인 다람쥐와 토끼들은 여전히 건재한 것은 바로 뛰어난 환경적응력과 생명력, 번식력 때문이다.

맹수는 배가 고파야 사냥한다. 힘이 있기에 그 힘만 믿다 보니 생긴 습성이다. 하지만 다람쥐와 토끼는 늘 움직이며 먹어댄다.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이다. 비록 한 치 앞을 모르는 삶이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게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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