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 104 >
궁보무사 < 104 >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3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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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격을 보아하니 저 놈이 바로 오근장 성주로군!'
오근장의 최후

아니나 다를까.

부용아씨가 늘 얘기해준 그대로 갈색 휘장 너머 벽면 위에는 발가벗은 선남선녀가 한데 엉겨붙은 채 찐하게 벌이는 사랑놀이를 아주 노골적으로 세밀하게 그려 놓은 그림들이 있었고, 또 다른 벽면 휘장 뒤에는 이 방 내부 모두를 골고루 환히 비춰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큰 청동 거울이 걸려있었다.

부용아씨의 말에 의하면 지금 이런 모든 것들이 오근장 성주 개인의 변태적인 성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특별히 만들어놓거나 준비해놓은 것들이란다.

'아! 아! 어찌되었든 부용아씨는 지독하고 악착스러우면서도 기가 막히게 머리가 좋은 여자다. 과거 이곳에서 오근장 성주와 살을 서로 맞대어가며 살았다지만 그래도 몇 년 전의 일일 텐데 어쩌면 이렇게도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가 있단 말인가.'

양지는 부용아씨의 놀라운 기억력에 다시금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때,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발걸음 소리가 양지의 두 귀에 들려왔다.

뚜벅 뚜벅 뚜벅…….

지금 저 묵직한 발소리로 미루어 보건대 상당한 체중을 지닌 자가 분명하였다.

'아! 오근장이 오는가보다.'

깜짝 놀란 양지는 얼른 침대로 돌아가 바로 그 아래에 두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았다.

이윽고, 커다란 문이 휙 열리면서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불쑥 들어왔다.

양지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상태에서 눈알을 위로 굴려서 슬그머니 쳐다보니 방금 들어온 사내의 키는 굉장히 컸고 그의 양 손에는 죽지유가 담긴 가죽 주머니와 번쩍번쩍 황금빛을 발하는 사발 한 개가 각각 쥐어져 있었다.

'아! 아! 체격이 저렇게 크고 이런 곳에 거침없이 막 들어온 걸로 보아 저 놈이 바로 오근장 성주인가 보구나. 평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체격이 훨씬 더 크고 얼굴 상판때기가 무척이나 고약스러워 보이는데….'

양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며 갑자기 엄습하는 공포에 기가 질린듯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그러나 양지는 곧바로 두 눈을 번쩍 다시 떴다.

아! 아! 저 놈.! 철천지원수 같은 놈. 비록 가난했었지만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던 우리 가족을 어느날 갑자기 풍비박산내버린 놈.! 내 몸의 모든 살가죽이 죄다 터지고 살점이 떨어져나가 시뻘건 핏물에 적셔지고 온몸의 뼈가 몽땅 다 으스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반드시 놈에게 복수를 해주고야 말 것이니….

양지는 속으로 이렇게 몇 번씩이나 다짐해 보며 이를 악 물었다.

"우후후후…. 네가 명기냐 네가 정녕 명기임에 틀림없더냐"

양지에게 바짝 다가온 오근장 성주가 예의 그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왔다.

양지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더럽고 징그러운 벌레들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와 자기 귓속을 마구 헤집으며 어지럽힌다는 기분을 느꼈다. 이것은 양지의 얼과 혼을 완전히 빼놓기에 충분하였다.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자! 내가 결정적인 기회를 보아 요 놈의 숨통을 완전히 끝내주기 전까지 나는 절대로 냉정 침착함을 잃어서는 안 돼.'

양지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해 보며 자꾸만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달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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