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규영 <청주 수동>
  • 승인 2011.09.1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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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시퍼런 멍 자국이 온몸에서 떠나질 못한다.

이것이 올해 칠십구 세가 되신 나의 어머니의 몸이다. 사십대 후반부터 앓아 오신 고혈압 탓에 복용하시는 약의 부작용이다. 혈액을 묽게 만드는 약은 쉽게 쉽게 몸에 멍을 만든다. 혈액이 혈관 속에서 뭉치는 것을 방지하지만 약은 어머니의 몸에 쉽게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어머니께 이 멍은 불가분의 관계가 돼 버렸다. 이런 어머니의 멍 자국을 보면서 새삼 인간관계도 그러함을 본다. 살다 보면 싫어도 만나야 하는 사이도 있고 좋아도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멀어진 사이도 있다. 또 살다 보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멍이 든다. 피부에 든 멍은 통증을 수반하지 않는 이상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이유 없이 마음에 든 멍은 쉽사리 없어지질 못한다. 또 반대로 내가 누군가에게 멍을 남길 수도 있음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마음에 시퍼런 멍 자국을 만든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나만 멍이 들었다고 마음 아프다고 외쳤는데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의해 행여 다른 이도 마음에 멍이 들었다고 외치고 있는 건 아닌지 두고 볼 일이다.

“또 멍이 들었네 어째?”

“멍, 들라고 하지 뭐. 이게 뭐 대수냐. 보기 흉해도 내 몸속에 내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는 거 아니냐. 내가 살아 있다고. 오래가는 멍은 없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생기고 없어지니까 멍이지 아님 흉이게. 멍은 신경 안 써도 된다.”

담담한 어머니의 답에 내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나는 남의 눈을 의식했다. 멍든 어머니의 모습을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어머니의 멍을 핑계 삼아 나를 걱정한 거였다. 마흔을 눈앞에 둔 나는 아직도 남을 의식하고 서투른 어린앤가 보다. 그렇다고 어린애처럼 순진무구하지도 않은 이 모순을 어쩐다. 완전히 백치처럼 순진하든지, 아님 차돌멩이처럼 단단하기라도 할 것이지 말이다. 독기를 품는다 해 놓고는 지가 품은 독기에 지가 지레 질려버리고, 시퍼런 멍에 놀라 뒤로 도망가는 어리석은 나는 오늘도 무심히 하신 말에 가르침을 받는다.

“세월이 가면 어머니처럼 그리 담담하게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겁니까?”

“때론 어린애처럼 순진하게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기는 겁니까?”

아직도 모르겠다. 배운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조급해 말아야겠다.

어머니의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걷다 보면 저절로 닮음새를 갖추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어 본다.

“그러다가도 조급함이 싹이라도 틔울라치면 어쩌지요. 어머니. 그러니 천천히 힘이 드셔도 오래 오래 걸어가세요.”

이런 나의 속내를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장으로 가시는 걸음이 느릿하다. 오랜만에 햇살 덕에 팔짱을 끼고 걷는 어머니의 속살 내음이 꿀처럼 다디달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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