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암골이 심상찮다
수암골이 심상찮다
  • 연지민 <교육문화부장>
  • 승인 2011.09.1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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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드라마 촬영지로 급부상해 전 국민들의 시선을 끌었던 수암골이 요즘 심상치 않다. 80대 노인들이 대부분 거주하는 마을이 때아닌 시위현장으로 변했다.

시위라야 마을 입구를 막고 대형차량을 통제하는 수준이었지만 드라마 세트장 조성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의지는 강경했다. 더 이상 물러나지 않겠다는 시위였다.

시위라는 말 자체도 모르실 어르신들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표면적인 문제의 발단은 마을 공터에 세워지는 드라마세트장이 원인이었다. 드라마 ‘영광의 재인’ 수암골 촬영이 예고되면서 마을 공터가 외부인의 손에 넘어갔다.

매입에 나선 서문우동 측은 드라마세트장 겸 추후 상업 건물로 활용한다는 계획으로 지난 8월부터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언덕을 오르며 조성된 동네여선지 공사차량이 지날 때마다 지축이 흔들렸고, 차량이 지날 때마다 발생하는 도로 파손 등으로 생활의 불편이 가중됐다.

어쩌면 수암골이 아닌 일반 공사장에서도 흔히 발생하는 소음과 민원이다. 그럼에도 수암골에서 벌어지고 주민들의 시위는 건물 신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시위와는 다르다. 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부와 빈의 갈등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1970년대 달동네로 알려진 수암골은 현대인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더구나 이러한 정서는 드라마로 연출되면서 전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드라마의 효과는 관광지로의 수암골로 올려놓으며 하루 2000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명소로 부각되기도 했다. 관심이 몰리자 상업주의가 뒤따랐다. 문화와 상품의 연결 고리는 결국 달동네 수암골 인근에 현대식 건물을 들어서게 했다.

밤이면 마을이 온통 컴컴해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했던 수암골은 점차 화려한 불빛으로 물들었고, 관광지라는 미명 아래 거리에 상관없이 달려온 사람들은 마치 동물원을 다녀가듯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다. 사생활 침해를 들먹이지 않아도 수암골 주민이라면 이런 시선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용하던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던 주민들은 사람에 지쳐갔다. 가진 거 없어도 마음 하나 믿고 살아가던 생활도 좀도둑이 기승을 부려 이젠 문 열어 두고 동네 마실도 가기 두려울 정도라고 한다. 얻은 것 없이 마음만 피폐해진 셈이다.

부의 급속한 유입은 수암골을 달라지게 했다. 골목으로 이어진 마을 한가운데가 자본에 팔려나가고, 제집도 아닌 땅값만 뛰어 가난을 더 가난으로 내몰았다. 여기에 고급 건물들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상처를 안겨주는 꼴이 되었다.

부가 끊임없이 부를 챙기는 사이 가난한 이들은 더 궁지로 몰리는 이 불쾌함을 주민들은 진입금지라는 수단으로 자기 목소리를 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대로 갈등을 덮고 가기엔 늦었다고 본다. 무엇이 수암골을 위하고, 수암골 사람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없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동등한 시민의 권리로 합리적인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주민들에겐 고도를 제한해 건물 증축을 불허하면서 상업주의자들에겐 쉽게 허가한다든가, 주민의 권리 주장은 외면한 채 외부 자본가들에게 너그러운 정책은 주민 불만만 키울 뿐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비록 작은 외침일지언정 부와 빈의 골 깊은 상처를 받은 그들을 위해 충북도와 청주시는 우선 정성껏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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