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2>
함영덕의 실크로드 견문록 <2>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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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푸강(黃浦江)가에 핀 상하이
황푸강 선착장


기체가 몹시 흔들렸다. 붉게 물든 경포호반의 저녁놀을 바라보며 시름을 잊던 유년의 갈대숲과 잔잔한 동해의 파도소리가 구름을 뚫고 창가에 어린다. 내 몸은 어느새 이국의 구름 속에 홀로 되어 있다.

지도 속에 펼쳐진 답사코스와 철길을 연결하다 보면 대륙의 미아가 된 것처럼 막막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광활한 초원과 사막의 바람소리가 미지의 향수가 되어 내 몸속에 조금씩 스며들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인천공항에서 상하이까지 1시간 35분 소요되었다. 우리보다 시차가 한 시간 앞선다. 잔뜩 찌푸린 구름사이로 내리는 가랑비가 도시를 적시고 있다.

커다란 광고판과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들, 빗방울을 삼키는 공항주변의 분수대, 왁자지껄한 중국인들의 대화소리를 들으며 처마 밑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중국여행의 첫 시작이 되었다.

인민광장을 향해 달리며 바라본 시가지의 건물들은 층수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잘 가꾸어진 가로수와 도심 곳곳에 나무와 꽃들이 피어있는 경관으로 인해 정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중심가로 들어서면서 고층빌딩이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서울거리의 포장마차나 거리의 노점 상인들이 있음직한 자리에는 나무나 꽃을 심어 시민들이 즐기는 녹지공간을 조성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노란 비옷을 쓰고 신호등 앞에 늘어선 수 백 명의 자전거를 탄 시민들의 모습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고 있다.

인민광장 앞에 내려 맞은편 도로에서 104번 버스를 타고 숙박지로 향했다.
상하이는 도로가 좁은 대신 육교가 발달된 도시다. 교각 밑 좁은 공간마저 나무나 꽃을 심어 차선을 구분시키고 녹지를 조성한 것을 볼 때 중국정부가 상하이에 대한 투자 정도와 기대감을 짐작케 한다.

구름을 뚫을 듯한 동방명주 TV탑이 보이는 육교에서 황푸강을 바라보면 유람선이 연이어 지나가고 있다. 탑을 에워싼 주변일대에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 군상들이 늘어서서 자본주의 힘찬 숨결을 뿜어내고 있다.

도심의 심장부를 가르며 뿜어내는 화물선의 고동소리가 꿈속에 잠자고 있던 동심을 자극하고 있다. 낯설고 이국적인 풍물에 흠뻑 취해 은행가들이 밀집한 강변을 따라 천천히 숙소인 포강반점(浦江飯店)을 찾았다.

상하이 대하(上海大厦) 맞은편에 위치한 이 호텔은 기숙사를 변형한 도미토리 형태의 숙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외국의 배낭족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커다란 홀 안 20개의 철재침대에 흰 시트가 깔려있는 1인용 침대가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욕실은 2층, 샤워는 3층으로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국제도시 상하이에서 55위안으로 하루를 지낼 수 있다는 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제자인 정군과 나는 짐을 풀고 먼저 온 건너편 침대 영국인 찬야와 에리냐양과 인사를 나누었다.

21살의 동감내기인 그녀들은 영국에서 카슈가르와 우루무치, 시안,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에 왔다고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대구에 영어를 가르치는 친구가 있다며 매우 반가워했다.

에리나는 중국산 자스민차를 나누어주었다. 홀 안에는 일본, 독일, 영국, 이태리 출신 등 다양한 배낭족들이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여행정보를 주고받았다.

건너편 침대 모퉁이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고 있는 젊은 아가씨를 발견하고 일본인이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우리나라 여대생 유나였다.

베이징을 거쳐 상하이로 혼자 왔다는 그녀는 외로운 차에 너무도 반가워했다.

남방으로 가는 방향도 비슷하여서 함께 동행을 하기로 하였다. 저녁 8시 호텔을 나와 황푸강 언덕에 이르렀다. 웨탄지역의 불빛과 동방명주TV 둥근 첨탑에서 뿜어내는 화려한 조명, 네온 싸인 속에 어둠을 가르는 유람선, 강변에 늘어선 도시의 불빛들, 화려한 네온 싸인 광고판, 정적을 깨고 토해내는 뱃고동소리, 어둠에 가려진 상하이의 첫날밤은 이국적 정취에 취한 나그네에게 낭만을 느끼게 해 주는 도시이다.

이곳은 공산주의 모습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중국 자본주의 심장이 고동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뿐이다. 강변 공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의 행렬과 가족들과 나들이 나온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망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꿈과 희망을 꿈꾸며 바라보는 황푸강은 수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말없이 어둠 속을 흐르고 있다. 네온 싸인 불빛에 묻혀버린 와이탄(外灘)으로 들어섰다.

넓고 광활한 황푸강 가에 연해있는 와이탄 일대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풍의 르네상스식 건축물들이 고풍스런 분위기를 한껏 뽐내듯 화려한 자태로 나그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상하이 안에 마치 유럽을 옮겨놓은 것 같다. 외백도교(外白度橋)에서 시작해 남으로 금릉동로(金陵東路)까지 이어지는 1km가 조금 넘는 이 지역은 한 세기의 건축예술을 볼 수 있는 이국적인 시가지다. 금융가를 지나 남경동로보행가(南京東路步行街)로 향했다.

남경로는 동으로 와이탄에서 서쪽으로 연안서로(延安西路)에까지 이르는 총길이 5,400m에 이르는 거리를 말한다. 이 구역은 화려한 건축물과 상점들이 밀집되어 휘황찬란한 야경으로 빛나는 중국제일의 상업지역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황금색과 붉은색조의 강렬한 네온 싸인 불빛은 명동보다 더 화려하다.

서장중루(西藏中路)와 하남중로(河南中路) 사이에 길이 1,033m의 보행로는 섬세하고 활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넓고 긴 광장으로 현란한 네온 싸인 숲에 도시는 활기에 차있다. 중국에서의 첫 식사로 상하이에서 유명하다는 훈둔과 중국에서 제일로 치는 청도맥주 한잔을 상하이의 밤과 함께 흥겹게 들이마시며 긴 여행의 안녕을 빌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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