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위한 변명
공무원을 위한 변명
  •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 승인 2011.09.0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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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공무원을 위한 변명. 이 거창한 제목은 프랑스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1886~1944)의 유명한 저서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 따왔다. 히틀러 나치즘이 유럽을 뒤흔들 때 어린 아들이 “역사는 무엇에 쓰는 거냐?”고 묻자 역사와 역사가가 왜 필요한지‘변명’해야겠다는 생각에 쓴 책이다.

공무원을 대신해 이유 있는 변명을 늘어놓으려 한다. 요즘 천안시청이 안팎으로 시끄럽다. 밖으론 시 간부 공무원 두 명이 수뢰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았고, 안으론 혈세(血稅) 낭비 논란에 휩싸였다. 수십억원 이자를 과다 지출했다는 충남도 감사 지적과 시가 수십억원 주고 산 땅을 다른 기관에 거저 빌려준다는 비난이다.

피같이 귀한 세금을 펑펑 썼다고 비판이 쏟아진다. 정말 이렇게 돈을 날렸다면? 월급에서 떼가는 근로소득세, 집 살 때마다 받아가는 취·등록세, 전국 모든 가정이 한두 건씩 내는 자동차세를 생각하면 분통 터질 일이다.

지난 4월 시는 주차장 용도로 지정된 청수지구 땅 4395㎡를 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40억원 주고 샀다. LH가 “시가 안 살 거면 민간에 팔겠다”는 걸 예산상 어려움을 들어 2년간 미루다 산 땅이다. 평면주차장(150대)으론 규모가 협소해 주차빌딩을 짓고 싶지만 예산이 없어 고민할 때 바로 옆에 사옥을 짓는 천안축협이 제안했다. 자신들이 그 땅에 70억원 들여 500대 규모 주차 빌딩을 짓고 1층은 판매시설(축협하나로마트)로 쓰면 어떠냐는 것이다. 주차장은 무료 개방하고 건물은 20년 후 기부채납하겠다는 조건이다. 지난해 불당동에 27억원 들여 주차 빌딩(153대)을 지은 바 있는 천안시로선 귀가 솔깃했다. 천안시의회에 공유재산 무상사용허가 동의안을 냈다. 의원들 간 거친 찬반논의 끝에 통과됐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시가 축협의 잇속 로비에 넘어가 축협만 사옥 부속 주차장과 판매장을 챙긴 셈이란 것이다.

그러나 시와 축협 모두 밑지지 않는 거래를 한 건 아닐까. 축협은 사옥 부지를 살 때 바로 붙은 주차장 부지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그 땅이 일반에 넘어가 비싼 유료주차장으로 운영되면 시민들 비난을 살까 봐, 분명히 시가 매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옥을 지으면서 꼭 필요한 금융시설과 판매시설을 모두 1층에 배치하고 싶었다. 부지(1834㎡)가 넓지 않아 불가능했다. 시도 받아들일 게 점쳐지는 ‘해법’이 나타났다. 일단 판매시설은 빼고 설계한 후, 시가 땅을 사는 걸 보고 그 ‘해법’을 제안했다.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7월 초 착공했다. 결과는 대성공. 2~4층 음식점·병의원 분양도 순조로울 전망이다.

다음은 천안시가 농협에 더 줬다는 이자 52억원. 제5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시금고인 농협으로부터 2008년, 2009년 총 1400억원을 빌렸다. 농협과 맺은‘금고업무 취급약정’보다 비싼 이자를 줬다고 충남도 감사 지적을 받았다. 시는 당시 국제금융위기 탓에 CD(양도성예금증서) 금리가 무섭게 오르자, 이자를 줄여볼 요량으로 취급약정에 적용받지 않는 별도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진정되면서 더 높은 이자를 내게 된 꼴이 됐다. 잘하려다 덤터기를 쓴 꼴이다. 지난해부턴 취급약정에 따른 이자를 내고 있다. 충남도는 농협과의 별도 계약은 생각지 않고 회수하란다. 속이 터질 일이다.

공무원 입장에서 이해하니 속은 편하다. 하지만 이면에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어 ‘변명’을 쓴 걸 후회할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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