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03>
궁보무사 <10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1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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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등잔불 뿐"

21. 오근장의 최후

여기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팔결성(城) 내부 어느 구석에 위치해 있는 오근장 성주의 밀실(密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한 창고 같아 보이지만 그러나 실인즉 이곳은 그(오근장 성주)가 개인적으로 은밀한 사랑을 몰래 즐길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어 놓은 비밀스런 방이었다.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못해 벌건 대낮에도 등잔불 한 두 개 정도는 항상 켜두어야만 하는 음산한 분위기의 이 방 안에 때깔 고운 비단옷으로 차려입은 웬 젊은 여자 하나가 몹시 불안하고 초조해 하는 모습으로 들어와 있었다.

조금 전에 목욕을 말끔히 마친 뒤 시종들에게 안내되어온 여장(女裝) 남자 양지였다.

양지는 지금 몹시 흥분되고 긴장이 되어진 듯 불그스레한 홍조를 얼굴 위에 띠운 채 방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가로세로 사십여 척(12미터) 정도는 족히 되어 보이는 정사각형 구조 면적에, 우람한 체격의 소유자 오근장 성주에게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유난히 높게 만든 천정과 황소 한 마리를 몰고 들어와도 될 정도로 커다란 출입문.그리고 몇 사람이 한꺼번에 누워서 이리저리 굴러도 될 만큼 아주 널찍한 침대와 갖가지 꽃문양을 형형색색 아로 새겨 넣은 비단 이불, 그리고 보드라운 양털 가죽을 엮어서 만든 요.게다가 방 안 곳곳에 고급 향료를 조금씩 뿌려놓았는지 달콤한 향내가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양지의 코끝을 가볍게 자극시켜주고 있었다.

그러나 양지의 두 눈에 가장 반갑게 들어온 것은 커다란 침대 머리맡 주변을 환히 밝혀주고 있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등잔불들이었다.

‘그래! 바로 저것이야! 저 등잔불만이 무술의 달인이자 체격이 산더미만큼 크다는 오근장 성주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야! 아! 아! 그런데….’양지는 갑자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약간 당혹스런 표정으로 방안을 이리저리 휘둘러보았다.

음침한 방 안의 분위기야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이 널따란 방 안에 여기저기 놓여있는 물건들….양지가 생전 처음 들어와 본 곳이지만 그러나 웬일인지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 전혀 낯설지 않아 보인다.

커다란 침대의 생김새와 주전자 물통이 놓여있는 위치, 그저 단순히 볼품거리로 갖다 놓은 꽃병들이며 값 비싼 도자기들마저도 양지에게 꽤나 눈에 익은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그러나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일찍이 이곳에 들어와 본 경험이 있는 한벌성의 부용아씨가 옛 기억을 차근차근 더듬어 가지고 이곳 밀실 내부의 구조와 물건들의 위치 따위들을 비슷하게 만들어놓고 양지에게 실전과 버금가는 연습을 충분히 시켜줬던 탓이었다.

그런데, 양지가 실제로 이곳에 들어와 보니 평소 자기가 늘 연습했던 장소와 별반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이기에 지금 이토록 크게 놀라워하는 것이었다.

‘으으음. 그렇다면 혹시….’양지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침대에서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벽면으로 황급히 다가가 커다란 갈색 휘장을 들춰 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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