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육, 편육, 제육, 밥 타는 곳
수육, 편육, 제육, 밥 타는 곳
  • 김우영 <소설가>
  • 승인 2011.08.31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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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식당에 가면 식사가 나오기 전에 간단히 반주를 하자며 수육을 안주로 시킨다. 여기서 ‘수육’은 삶아 익힌 고기를 뜻하는 한자어 ‘숙육(熟肉)’에서 변한 말이다. ‘숙육’의 발음이 불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ㄱ’이 탈락하고 ‘수육’이 됐다.

본디 ‘수육’이 ‘숙육’에서 온 말이므로 대부분 돼지고기나, 쇠고기 등을 포함한 통칭의 삶은 고기 모두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육은 쇠고기를 말한다. 삶아서 얇게 썰어 접시에 내놓는 이런 형태의 요리는 주로 쇠고기로 하기 때문이다.

또 ‘갈매기살’은 돼지고기를 말한다. 반면 같은 부위의 쇠고기는 ‘안창살’이라고 부른다. ‘수육’은 쇠고기만을 가리키는데 돼지고기는 ‘돼지고기 수육’ 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 말이다.

‘수육’과 비슷한 것이 있는데 ‘편육’이 있다. 고기를 삶아 돌덩이 등 무거운 것으로 눌러 기름기와 핏기를 뺀 뒤 얇게 저며 썬 것이 ‘편육(片肉)’이다. 결혼식 피로연 등에서 나오는 ‘돼지머리 편육’이 대표적이다.

차라리 돼지고기 삶은 고기는 ‘수육’이란 말보다 ‘편육’이 잘 어울리는 말이다. 물론 쇠고기도 편육은 있다.

‘제육’은 돼지고기를 뜻하는 한자어 ‘저육’이 변한 말이다. 이를 가지고 요리한 것이 ‘제육볶음’이다.

따라서 ‘수육’은 쇠고기를 재료로 한 것이고, ‘편육’은 돼지고기로 만든 것이며, 제육은 돼지고기를 뜻하고 제육볶음이 대표적인 요리이다.

각 기관이나 학교 구내식당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는 용어가 ‘배식구’, ‘퇴식구’이다. 이런 안내문을 보면 무슨 뜻인지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지만, 문장의 어법상에는 적절하지 않다. ‘배식구(配食口)’ 대신에 우리말로 ‘밥 타는 곳’, ‘퇴식구(退食口)’는 ‘식기 반납하는 곳’으로 순화용어를 사용하면 좋을 터인데, 이 역시 사대주의 팽창에 따른 어수룩한 편승이다.

얼마 전 외국을 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탔다. 기내 좌석에는 국·한문 혼용 안내문구가 붙어 있었다. ‘구명동의(救命胴衣)는 좌석(座席) 밑에 있음’이었다. 이 말을 이해하겠냐고 일행에게 물었다? 그러자 반신반의. 이러한 문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항공사의 한글 이해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승객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내 문구가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로 쓰여져 있다는 얘기이다. 이 말을 ‘비상용 의류 자리 밑에 있습니다’하면 좋을 것을.

약국에서 파는 의약품 설명서를 보라. 잘못 사용하면 치명적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의약품 안내문에 ‘경구 투여 금지’라고 적혀 있다. 이를 ‘먹으면 안 된다’는 말로 쉽게 적어 놓으면 좋을 것을 말이다.

근래 정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국어책임관제’를 지정 운영하고 있다. 일본식 한자어나 어려운 외래어로 된 행정·법률용어를 바른 국어로 순화사용하자는 운동이다. 다 함께 이 운동에 동참하여 나라사랑 바른 나라말을 가꾸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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