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드라마, 역사는 역사다
드라마는 드라마, 역사는 역사다
  •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 승인 2011.08.3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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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 하지 마라.’ 개그 프로그램에서 위험스러운 장면이 나올 때 자막에 뜨는 문구다. TV 역사드라마에도 적용될 듯싶다.‘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따라 믿지 마라.’

올해는 사극의 해다. 공중파 채널 모두 한 편씩 방송 중이다.‘공주의 남자’(KBS2 수·목) ‘무사 백동수’(SBS 월·화) ‘광개토대왕’(KBS1 토·일) ‘계백’(MBC 월·화). 2006년 중국의 동북공정 탓에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등 고구려 드라마가 휩쓸 때를 떠오르게 한다.

앞의 두 드라마는 세조·영조·정조 등 조선시대, 뒤 둘은 삼국시대가 배경이다. “드라마 계백을 보고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계백이 신라 포로로 잡혀 김유신 밑에서 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실입니까? 허구입니까?” 포털사이트에 오른 질문이다. 물론 허구다.

삼국시대를 밝힐 수 있는 자료는 『삼국사기』『삼국유사』와 중국·일본 사서, 금석문, 출토품이 전부다. 계백 아버지에 대한 얘기도, 의자왕의 어린 시절도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광개토대왕 생애도 미스터리다. 웅장한 비(碑)가 남아 있지만 내용은 그의 생애보다 고구려 건국, 정복 활동, 묘지기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광개토대왕 이름이 담덕인 것은 맞지만 그의 형(담낭)이 있었다는 건 들어본 일이 없다.

삼국시대 드라마는 시청자 대부분이 진실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니 큰 문제가 없다. 조선시대는 다르다.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등 관찬 사료 및 개인 문집이 많아 어느 정도 실상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사극을 좋아한다. 항상 부담이다. 대학서 사학을 전공한 죄(?)로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 “‘공주의 남자’에 나오는 김승유와 수양대군(세조)의 딸 세령아씨가 실존 인물이냐. 그들이 결국 맺어지냐?” 즉답을 못하면 핀잔이 쏟아진다. “사학과 나오고도 그걸 모르냐.” 역사학을 전공했다고 김종서 아들, 세조 딸 이름까지 꿰고 있을 순 없다. 인터넷 검색하고, 책을 뒤져 봐야만 했다.

김승유는 김종서(1383~1453)의 실존한 셋째 아들이 맞으나 세령은 세조(1417~1468) 딸인지 명확하지 않다. 야사는 김종서 손자(둘째아들 김승벽의 아들)와 집 나온 세조의 딸이 인연을 맺었다고 전한다. 그 딸이 이세희 혹은 의령공주로 알려졌다. 이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와 세령아씨를 만들어 낸 모양이다.

세조와 신숙주(1417~1475)는 ‘완전 악역’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사람이 만드는 역사는 이렇게 단순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김종서·황보인 등 대신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단종 초기 정국을 곱지 않게 보던 관료층이 당시 분명히 있었다. 어쨌든 세조는 조카·친동생까지 죽여 천륜을 어긴 왕, 신숙주는 쉽게 쉬는 숙주나물에 이름 붙여져 변절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 역사적 사실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드라마 영향력은 너무 엄청나다. 그대로 믿는 시청자가 있다. 드라마엔 작가 상상력에 의한 허구가 있기 마련이고 삼각관계는 기본이다. 극적 긴박감과 묘미를 위해 눈 감을 수 있다. 그렇지만 드라마가 전체적인 역사상(像)을 잘못 전달해선 안 된다.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청소년이 있다. 18세기가 배경인 ‘무사 백동수’에선 청나라를 공격해 병자호란 때 원수를 갚자는 북벌론(北伐論)이 등장한다. 북벌론은 효종·숙종시기 17세기 후반 논의됐다. 세월이 흘러 청에게 신문물을 배우자는 북학파가 대두될 시기에 웬 북벌타령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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