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속에서 잠자는 닭
알 속에서 잠자는 닭
  • 이진순 <수필가>
  • 승인 2011.08.25 1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꽃과 새를 기르는 취미에 빠져 지낸다. 알록달록 꽃을 피우는 일년초를 뜰에 심어 놓고 신비스러움에 취할 때가 있다. 물을 주면 수상 쇼를 즐기는 새들의 놀이에 흠뻑 빠지다 보면 오전 시간이 빠르게 가 버린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부업으로 집에서 돼지와 닭을 기르셨다. 그 탓인지 주위에 아무것도 없으면 삭막한 기분이 들어 꽃과 새, 닭이 친구가 되었다.

직업에서 물러나 집에서 가사 일만 하면서 프록시(일본닭) 한 쌍을 들여왔다. 오골계와 같이 검고 작으며 머리에 하얀 솔방울 모양의 볏이 귀엽다. 일 년이 지나니 알을 낳기 시작하더니 새끼를 품겠다고 둥우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두 마리 암컷에게 삼십여 개의 알을 나눠 넣어 주었다. 둥우리에서 태교를 하는 모습은 경건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먹지도 않고 꼬꼬거리며 수컷을 근접도 못하게 한다.

정성을 들이고 있는 모습은 열 달 동안 힘들어 하는 어머니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더위도 아랑곳없고 천둥번개 밤이면 야생 고양이들의 시퍼런 눈망울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안쓰러워 주둥이 가까이 먹이와 물을 들이대 보지만 깃을 세우고 꼬꼬거릴 뿐이다.

이십여 일이 지나자 병아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삼 일째 되던 날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고 작은 품속에 알이 병아리가 되어 오글거리며 고개를 내밀고 "삐약 삐약"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난 반갑고 신비스러워 새장을 갖다 놓고 산실을 마련했다. 계란을 삶아서 체에 내려 먹이로 주고 물을 갖다 주었더니 물 한 방울 입에 물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알이 다 깨 나오는 동안 병아리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일요일이면 와서 병아리 냄새가 싫다고 코를 막기도 하지만 전 예쁘기만 하니 전생에 닭이 아니었나 싶다. 사료를 주면 어미가 꼬꼬거리며 발로 신나게 휘젓는다. 사료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야속해서 먹이통을 좁게 만들어 주었다. 먹이를 흩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어미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미가 꼬꼬 하고 병아리들을 부르면 쪼르르 달려가는 폼은 낯가림하는 손자를 보는 것 같다.

암탉이 어미 노릇을 하는 동안 수컷은 하얀 솔방울 모양의 볏을 뽐내는 짓을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고 독수공방을 하고 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남편은 토종닭 암컷만 있는 동네에 장가를 보내잔다. 덩치가 두 배나 되는 암컷에게 쪼여 죽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넣어주고 관찰을 하니 왕따를 당하여 먹이도 못 얻어먹고 있었다. 사흘이 지나니 이게 무슨 일. 수컷은 수컷인가 보다. 밥그릇에 탁 들어 앉아 왕 노릇을 한다. 암컷들이 작은 체구의 프록시에게 다소곳해졌다. 웃음이 났다. 우리 집 닭장이 다문화 가정을 이룬 것이다.

어미 닭 두 마리는 스물세 마리의 병아리 떼를 몰고 유치원 원장처럼 아가들의 재롱에 푹 빠져 있다. 어찌나 바리 집고 빽빽거리는지 지금은 음악시간인가 싶다. 어미 등에 올라가 재롱을 떨고 다른 놈은 어미의 얼굴을 콕콕 쪼며 뽀뽀를 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병아리들, 어미는 날개를 펴고 병아리들을 품속에 가둔다. 따듯한 어미의 품속에 다리만 보인다. 어쩌면 한 폭의 동양화 같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