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골프
공무원과 골프
  •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 승인 2011.08.2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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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참으로 말 많은 게 골프다. 특히 공무원에겐 그렇다. 골프 때문에 옷 벗은 공무원이 어디 한둘이냐. 모두가 좋아하는 운동인 골프가 어떻게 공무원에겐 흉기가 될 때가 많을까. 부적절한 사람과 필드에 나가기 때문이다. 골프는 운동으로만 끝나지 않고 '관계'를 만들고, 또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특성이 있다.

참가자들은 긴 시간 동안 어울려 잔디밭을 거닐며 대화를 나눈다. 축구처럼 경기 내내 뛰지 않아 차분한 가운데 진지하고 때론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런데 항상 그 대화 내용이 문제다. '누구와 치냐'가 문제란 얘기다.

천안시청에서 수년 새 골프가 화두가 된 적이 여러 번 있다.

1. 2005년 9월 시장이 직원들에게 골프금지령을 내렸다가 내부 반발로 연습장 출입만은 허용했다.

2. 2007년 12월 골프장 건설 인허가와 관련된 모 국장(서기관)이 해당 골프장 신규 회원권(2억3000만원)을 3000만원 싸게 샀다가 망신을 당했다.

3. 2008년 2월 공무원들이 각종 비리로 구속되자 공직기강 대책을 마련했던 데 '골프 신고서'가 등장했다. 감사담당관실에 신고한 경우만 골프장을 출입하도록 했다.

4. 2010년 1월 시장이 새해 첫 간부회의에서 "시민을 위한 희생·봉사"를 강조하며 골프장 출입 자제를 당부했다. 사실상의 골프장 금족령이었다.

골프 금지령은 모두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골프 신고제는 이름뿐인 시책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공무원이라고 남은 다 즐기는 운동을 못하게 할 순 없다. 골프 금지령은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전시 행정적' 요소가 짙다.

요즘 진행 중인 천안 공직자 비리 재판서도 골프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구속된 전 천안시수도사업소 하수과장 최모씨(52·4억8000만원 수뢰혐의)는 '업자'들과 필리핀 해외골프를 치러 갔다. 그들은 1200억원짜리 하수관거사업 공사 수주와 연관된 주무과장-업체 관계였다.

정보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천안 경찰간부 H씨(56·구속기소)는 천안시장과 부부동반으로 골프를 쳤다. 재판과정에서 검사가 H씨가 천안시 인사와 관련해 돈을 받을 수 있는 위치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폭로'했다.

지난 17일 재판에서 H씨 변론을 맡은 변호사가 최씨에게 "선(先)1000만원 후(後)골프냐, 선 골프 후 1000만원이냐"를 집요하게 물었다. 최씨가 시장과 골프 친 후 식사 자리에서 '심상찮은 분위기'(좌천 가능성)를 느껴 H씨에게 돈을 주며 인사 청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선후 관계가 중요했던 것이다. 이 골프 회동엔 H씨와 환경업체 황모 대표(57·불구속기소)도 참여한 걸로 알려졌다.

주위에서 골프에 '빠진' 사람을 종종 본다. 날씨가 선선해지는 요즘, 골프장 부킹해 놓고 부르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다.

최근 만난 고교 동창생이 이번 가을 동문회 골프대회엔 참가자들이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대여섯 명이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공기업 간부다. 회사 청렴규칙에 친구나 동창들과의 운동만 허용돼 있어 동문 골프엔 꼭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그 규정을 곧이곧대로 지키냐"고 물었다. 그는 대부분 직원은 자신들의 업무상 필요한 조치로 받아들여 큰 불만은 없다고 했다. 부적절한 골프는 발각되면 징계를 받는다고 했다.

공무원이라고 좋아하는 운동, 끊을 순 없다. 그러나 가려서 해야 할 위치(지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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