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없는 서민들, 겉도는 주택 정책
집없는 서민들, 겉도는 주택 정책
  • 이재경 부국장<천안>
  • 승인 2011.08.21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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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1. 이사철을 앞두고 서민들이 울상이다. 전셋집은 구하기 어렵고 마땅한 소형 주택들은 죄다 월세만 나오고 있다. 충남 천안에선 특히 그 현상이 더 심하다. 외지에서 연간 2만여 명 정도 인구가 유입돼 주택 실수요자들이 폭증하고 있는데도 불구 주택공급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청에선 남아도는 아파트가 수천 세대나 되는데 웬 말이냐 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게 다 서민들이 사기 힘든 대형 아파트라는 데 있다.

올해 7월 말 기준 천안시의 미분양 아파트는 모두 24개 단지 4276세대다. 이 중 옛 20평형대인 전용 면적 60㎡ 이하는 단 45세대뿐이다. 나머지는 다 중대형이다. 30평형대인 85㎡ 이하 규모는 무려 2358세대, 55%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85㎡를 초과하는 대형 아파트도 1873세대로 전체의 44%다. 천안에서 서민들이 가진 재력으로 마땅히 살 만한 미분양 아파트는 불과 전체의 1%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건설사들의 욕심이 원인이었다. 같은 면적에 대형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면 훨씬 이익금이 많이 들어온다. 소형 아파트를 지으면 쉽게 분양이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익이 많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설사들은 30평형대 이상의 중대형 아파트만 지었다. 심지어 서민들의 주거를 책임져야 할 LH공사마저 중형 아파트에 눈독을 들였다.

업계에 따르면 소형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면 중대형 아파트보다 최소 10~20%까지 수익성이 차이가 난다. 어차피 집 구조는 똑같고, 기반 시설은 동일하게 설치해야 하는데 소형 아파트의 경우 용적률에서도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2. 집 없는 서민들의 월세 부담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악순환을 불러온다. 최근 천안에서 23~24평형대 시내권 월세 아파트의 시세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 60만원 정도다. 정상적인 은행 금리를 계산한다면 아파트를 사고도 남을 1억2000만 원 정도의 비싼 전세를 주고 살아야 하는 셈이다. 월 소득이 300만원 정도인 가장이라면 관리비용이나 도시가스비, 전기요금 등을 빼고 빈집 하나 건사하는 데 드는 주거비용만 전체 소득의 20%를 내다버려야 한다.

정부, 지자체에 책임을 묻고 싶다. 천안의 경우 집 없는 서민을 위해 시가 발주해 직접 지어 공급한 시영 아파트는 단 두 곳밖에 없다. 시영 1차, 2차 아파트가 전부인데 1992년, 1994년에 500여 세대를 분양했다. 그게 끝이었다. 몇십 세대의 소규모 임대아파트 말고는 직접 값싼 시영 아파트를 짓지 않았다. 천안시는 1990년대 말 인구 급증으로 개발 붐이 일면서 대단위 택지 개발을 통해 수천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그런데도 그 돈으로 서민들을 위한 주택 공급을 외면했다. 정부도 LH공사의 방만한 경영을 나 몰라라 한 채 대형 아파트 공급 위주의 시장 상황을 방관만 했다. 그 결과 욕심을 부린 건설사, 금융권이 나자빠지는 사태까지 초래했다.

이런 가운데 천안시가 추진 중인 소형 임대 아파트 건립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서북구 두정동에 전용 면적 60㎡ 규모의 아파트 28세대를 짓는 사업인데 2004년부터 시작해 놓고 7년째 공염불이다. 사업비가 26억원에 불과한데 지난해까지 겉돌다가 이제 겨우 6억원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연간 예산이 1조원을 넘는 천안시의 주택 정책 현주소가 이 정도라니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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