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사는 법
간단하게 사는 법
  •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 승인 2011.08.1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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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미국의 금융위기 파문이 유럽 전체로 전이되면서 세계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엄청난 위기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슬그머니 언론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언론에서의 금융위기 실종이 위기감의 해소는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새삼스럽게 세계 금융위기를 언급하는 것은 그 실체를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기 위함도 아니다. 아니 나는 그런 식견과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다만 적어도 금융과 자본이 중심이 되는 현재의 세계 경제 질서가 노동과 생산성이라는 근본적인 가치 기준을 크게 왜곡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세계 경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본과 금융이 노동과 생산성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공룡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 같은 첨단의 시대에 원시경제 체제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위 돈 놓고 돈 먹기식의 자본과 금융의 탐욕보다는 일과 그 일을 하는 사람의 가치가 존중되는 원형질서의 존엄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일, 즉 노동과 생산성이 중심이 되며,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격언이 새삼스러운 것은 얼마나 간단하게 사는 법인가.

천만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투표가 우여곡절 끝에 8월 24일 실시된다.

독자 제현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이번 투표는 아이들 밥 먹이는 일에 대해 주민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이 또한 얼마나 복잡하게 세상을 풀어 가는 것인가.

무슨 밥을 먹여야 하며, 그 밥값을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일일이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이 어른으로서 그렇게 몽니를 부려야 할 만큼의 도리인 것인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주무르고 있는 거대 도시 서울특별시가 660억원에 불과한 무상급식 예산에 치를 떨며 전전긍긍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세상을 그토록 복잡하게 만들면서 기어코 투표를 해야 직성이 풀릴 것이라는 아집으로 인해 써야 할 예산이 무려 180억 원이라니 그 돈의 진정한 가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혹자는 말한다. 대한민국 최고 부자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이건희씨의 자식들에게도 공짜 밥을 먹여야 하는가 라며 이를 불평등과 불균형의 대표적인 포퓰리즘이라고.

그러나 이런 차별이 덜 가진 집 아이들에게는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인권과 인간성의 실종과 더불어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로 남을 수 있음은 고려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곱씹어 볼 일이다.

간단하다. 노동과 생산성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맞닥트리며 일의 소중한 가치를 실천하는 이들에게는 어떻게든 부담을 덜어주고, 금융과 자본을 통해 땀 흘리지 않고도 배를 불리는 이들에게는 더 많은 부담을 주면 된다.

부자는 부자답게 더 많은 사회 공헌과 배려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노동의 존엄한 가치만큼 혜택을 주면서 자신의 수고로움이 세상을 윤활하게 하고 있다는 희망으로 살 수 있게 해 주면 된다.

적어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럼없이 하면서 세상을 간단하게 살 일이다.

지금은 투표보다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8월의 비로 타들어 가기만 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애틋하고 살뜰하게 살펴보는 것이 우선일 때 아닌가.

금융위기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그저 신문이며 방송에서 떠들썩하게 지껄이지 않아도 그 혼란의 와중에 엄청난 좌절을 맛봐야 하는 탐욕은 일할 수 있음의 소중한 가치로 이겨내야 하며, 불로소득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어렵고, 복잡하게 세상을 만드는 인간의 탐욕이 어지러우니 그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하늘만 우러러 봐야 하는 8월의 습기가 짜증스럽기만 한데 세상을 간단하게 사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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