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만 잡으면 된다고?
'복지'만 잡으면 된다고?
  • 권혁두 국장<영동>
  • 승인 2011.08.1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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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200년 전통의 미 의회 견습생 제도(페이지 프로그램)가 다음 달 폐지된다.

고교 2학년 재학생들을 선발해 의회 의원실을 돌아다니며 연락사항과 우편물을 전달하는 잔무를 맡기는 제도이다. 매 학기 70명을 선발해 의회내 기숙사에 머물며 일하게 하고 매달 1800달러를 지급한다. 1774년 대륙의회 때부터 운영돼 왔으니 미 의회와 역사를 같이한 제도이기도 하다. 의회는 이 제도를 폐지하는 이유로 '컴퓨터 등 기기 발달로 이들이 할 일이 사라졌고, 운영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의 연간 운영예산은 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54억원이다. 물론 적은 액수는 아니다. 그렇지만 미국의 경제력과 미 의회의 위상을 고려할 때 이 예산이 상징적 의미만 해도 만만찮은 200년 전통을 포기할 정도로 부담이 될 만한 금액인지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예산절감 효과를 노렸다기보다는 최근 미국이 처한 국가채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의회가 팔을 걷고 나섰음을 알리려는 상징적 제스처로 읽힌다. 한 푼이라도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여 국가 재정을 살리겠다는 의지의 발현이 목적이 아닌가 싶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 위기가 국내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대책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선진국 재정 위기의 주범이 곳간을 거덜낸 포퓰리즘 정책들이라는 진단이 나오면서 과도한 복지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이 도마에 올라 연타를 맞고 있다. 무상급식을 놓고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서울시는 신이 났다. 주민투표에 대해 직접적 언급을 삼가던 청와대도 돌연 확고한 지지 쪽으로 선회하며 오세훈 서울시장을 원호하고 나섰다. 미국과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선진국의 포퓰리즘 정책들이 주범으로 몰리는 상황이 투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결과를 자신하게 됐을 것이다.

분수를 넘는 복지 확대가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망친다는 논리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다. 유로존 위기의 도화선이 됐던 그리스도 방만한 연금 운용 등 무차별적인 복지정책을 강행하다 위기를 자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복지를 중시한 정책만이 주범은 아니었다. 그리스는 공식 지표에 잡히지도 않는 지하경제 규모가 GDP(국내총생산)의 25~37%에 달한다고 한다. 엄청난 세금 탈루가 이뤄진다는 얘기다. 지난 2007년에는 목표치 대비 310억 유로(47조원)의 세금을 걷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불공정 세정뿐 아니라 공직 부패, 비효율적 행정도 재정을 좀먹은 요인으로 꼽혔다. 세수만 제대로 챙겼어도 재앙은 없었을지 모른다.

미국의 국가채무 위기도 지난 2007년 민간 금융의 파탄을 공적자금으로 틀어막으며 생긴 재정 부담이 결정타가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탐욕으로 치달리다 좌초한 금융 시장과 미래 예측은 물론 대비에도 실패한 정책이 문제였지 친서민 정책이 책임질 사태는 아니라는 얘기다.

복지의 축소나 유보에서 처방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는 우리네로서는 짚어볼 내용이다. 공평한 세정 확립과 예산낭비 근절에서 처방을 찾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세정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합법·비합법 탈세행위가 대기업과 고소득 자영업층에서 횡행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개선은 지지부진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방만한 예산 운영도 심각하다. 전국 광역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최근 10년 새 10%P나 떨어졌다. 지자체마다 앞다퉈 설치한 공기업들의 부진이 요인이다. 광역지자체 소속 16개 도시개발공사의 부채가 지난해 6월 말 현재 40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공사들이 추진하다 실패한 건 토지·주택 사업들이지 복지사업이 아니다. 복지로 투입돼야 할 재정이 토목에서 결딴나고 있다는 정반대의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자격도 없으면서 복지 선진국 흉내를 내며 포퓰리즘을 운위하는 것은 허세로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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