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과 YS
노태우 비자금과 YS
  • 한인섭 <사회부장>
  • 승인 2011.08.1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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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일선서장을 지낸 후 퇴직한 전직 경찰간부 A씨는 청와대 경호실 근무 당시 재벌총수들을 통해 경험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에 얽힌 단편적 일화를 사석에서 들은 적이 있다.

“며칠이 멀다 하고 재벌총수들이 저녁마다 청와대로 호출됐다. 그때마다 ‘잘 좀 모셔 달라’는 대기업 비서실 책임자들의 청탁을 받곤 했다. 원칙적인 경호 시스템을 적용하면 4~5차례 검문을 거쳐야 대통령 집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한 차례 검문으로 프리패스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다음날이면 재벌 비서실에서 촌지(寸志)를 보내곤 했다. 당시로선 제법 큰 액수였다. 성가신 일 없게 예우해 줘 고맙다는 인사였다. 사건(전두환·노태우 자금 수사)이 터진 후 비자금 거둬들이느라 밤마다 그렇게 난리를 쳤구나 뒤늦게 감을 잡았다.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다.”

10일 공개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세간의 화제이다. 노태우 회고록에 소개된 내용은 전직 경찰간부의 경험과 오버랩돼 한층 흥미를 끌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5·6공 시절 정치자금 창구는 청와대로 단일화돼 있었다는 점을 밝혔다. 재벌총수들이 앞다퉈 청와대를 방문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점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서울 올림픽 이후 기업인들의 면담 신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면담이 끝날 무렵 ‘통치자금’에 써 달라며 봉투를 내놓곤 했다. 기업인들이 나가면 경호실장을 불러 곧바로 넘겨주곤 했다.”

회고록 내용으로 보면 자신은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정거장’ 역할만 했다는 소리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재벌총수들에게 받은 돈 일부를 여당 사무총장을 불러 당 운영비조로 건넸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 민정당 대표 시절에도 그랬고,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도 관례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는 퇴임 후까지 비자금을 보유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설명했다. “현금 1218억원과 기업인에 대여한 채권 1539억원으로 원금만 2757억원(법원이 선고한 비자금 추징액은 2629억원)이었다. 대선 때 다 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큰돈이 남아 깜짝 놀랐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대선자금 3000억원을 줬는데 나머지는 본의 아니게 전해 주지 못한 돈이라고 규정했다. 3당 합당을 통해 YS와 한 배를 탔던 노 전 대통령은 후임에게 모두 넘겨 주려 했는데, 결국 단죄와 감옥 신세를 면치 못했다는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가 택한 방식은 YS의 대선비자금을 자세히 거론하는 것이었다.

가장 근접한 시점을 잡더라도 20년이 훌쩍 넘은 사건들이다. 그러나 5·6공 쿠데타 세력의 야사는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다른 얘긴 접어두더라도 엄청난 비자금 규모와 씀씀이, YS의 비자금 수사와 단죄, 은닉자금 추징과 회수에 이르기까지 이보다 많은 뒷얘기를 양산한 정치세력도 없다.

YS는 3당합당으로 이들의 바통을 이어 받았다. 하지만 그는 가장 큰 정치적 성과로 하나회와 쿠데타 세력 단죄를 빼놓지 않는다. 그는 대통령 재임시절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번번히 호언하기도 했다. 노태우는 이런 YS를 향해 “대선 때 3000억원 받았지 않냐”며 일격을 가했다. 쿠데타 세력의 구린 돈으로 대통령이 됐다는 소리나 다를 게 없다. ‘정거장’ 역할은 했지만, 재고를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고 할까. 그렇지 않으면 당에서 알아서 한 일이라 할까. 발끈할 YS가 어떤 독설을 내뱉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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