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징악과 해피엔딩
권선징악과 해피엔딩
  •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 승인 2011.08.0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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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얼마 전에 종방된 KBS 1TV 일일연속극 '웃어라 동해야'는 가수 출신 연기자 박정아의 악역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녀는 사귀던 애인을 배신했으며, 쇼트트랙 유망주에서 어렵사리 요리사로 변신해 성실하게 성공을 추구하던 그 남자에게 시종일관 표독스럽게 대해 시청자들에게 공분을 사기도 했다.

나는 이 드라마의 적극적인 시청자였으며, 이 드라마는 50.5%로 올 상반기 TV 프로그램 가운데 분당 시청률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나는 이 연속극을 보면서 가족들에게 적지 않은 지청구를 들었다.

평소 대중문화를 운운하면서 거의 모든 TV 프로그램에 부질없는 분석을 해대는 탓에 같이 TV를 시청할 재미가 생기지 않는다는 핀잔을 들어 온 탓인가. 내 가족들은 내가 이 일일연속극에 탐닉하는 것을 의아해 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남성들의 TV드라마 시청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선호돼 왔던 사극 중심에서 벗어나 트렌디 드라마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지고 있다.

시청률 조사 전문회사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는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시청률 상위 10위까지의 TV드라마를 분석한 결과 중년 남성 시청자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최근 발표하기도 했다.

위키 백과사전은 트렌디 드라마를 깊은 사색이나 심각한 정치적인 내용보다는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행동이나 내용을 담은 TV 드라마를 지칭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X세대라는 신세대의 부류가 생성되자 기존의 멜로나 지지부진한 삼각관계 등의 진부한 소재를 벗어나 자유롭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풍조가 사회에 만연하면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라고 부언하고 있다.

중년 남성들이 이처럼 TV드라마에 빠져드는 현상은 사회적 변화로 정의할 수 있을 만큼 결코 예삿일이 아니다.

나는 일일연속극 같은 TV드라마가 대부분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라는 우리 고전소설의 원칙을 충실하게 지킴으로써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착함을 이끌어 내고 악한 것을 철저하게 징치하는 소설적 장치는 어쩌면 갈수록 힘을 잃어가는, 그리고 세월의 무게에 감당할 수 없는 이 시대 중년의 남성에게 권선징악은 그야말로 완벽한 욕망의 탈출구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간악하기 그지없는 악의 무리와 대항해 끝까지 싸우다가 마침내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 내는 해피엔딩은 나약하기만 하며,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해 온 유토피아에 대한 갈증의 해소로 작용하는 건 아닐까.

나는 이런 이유 때문에 TV드라마에 빠져든다.

그 TV 연속극이 막장이며,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연속이며 이야기 전개가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나, 착함이 이기는 것은 물론 행복한 결말까지 얻게 되는 드라마는 차라리 통쾌하다.

새삼스럽게 세상에서 정의는 갈수록 사라지고 있으며, 기득권층의 든든한 벽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음을 상기하지 않아도 이 시대 중년의 남자는 서럽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쉽게 이루어낼 수 없다는 절망감. 그리고 왠지 모르게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자괴감은 아무래도 중년의 남성들을 불안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대육신 멀쩡한 이 시대 남성이 밤늦도록 TV 연속극에 빠져 있다는 것은 허무하다.

가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꾸며낸 이야기를 대리만족의 수단으로 여기면서 일희일비하는 일은 나 역시 짜증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어쩌랴. 사는 일은 여전히 버겁고, 또 그 힘겨운 나날을 감당하기에는 그야말로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그나마 빠져들 수 있는 드라마라도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설령 그것이 한류라는 이름으로 문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라는 과대 포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는 오늘도 우리집 TV리모컨을 독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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