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지수와 유사기름
불쾌지수와 유사기름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1.07.20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전화를 받았다. 다소 격앙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온다. “매일 회사와 집을 오가는 곳에 주유소가 있어 늘 그곳에서 기름을 넣는데 그곳이 유사석유를 팔다 적발되어 영업정지를 당했다는데 문 닫은 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버젓이 영업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영업하는 꼴을 보니 분해서 못 참겠습니다.”라고 하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의견을 물어 왔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이해가 가나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그분의 말씀에 공감하는 것으로 위안을 드렸다. 영문도 모르는 차들이 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예전에 청주 시내에 유독 기름값이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한 곳이 있었다. 자주 오가던 곳이라 단골 삼아 몇 년 동안 그곳에서 기름을 넣곤 했다. 싸다고 해봤자 몇 원, 몇십 원 정도지만 가파르게 치솟는 기름값을 생각해 다른 곳을 마다하고 그 주유소만 고집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름을 넣기 위해 갔는데 주유소가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주유소는 석 달이 지나서야 다시 문을 열었다. 그때는 기름값도 다른 주유소와 별 차이가 없어 일부러 그 집을 찾아가는 일은 없었다.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을 보고 유사석유를 파는 곳에서 단골들에게 주입구 뚜껑 안쪽에 스티커를 붙여 놓고 그 차에 유사석유를 넣는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전 청주 외곽을 지나다 셀프 주유소를 발견하고 처음으로 이용했다. 난생처음 주입구를 열고 보니 주입구 안쪽에 노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왠지 모를 배신감에 쓴웃음을 지었다. 몇 푼 싼 맛에 단골로 이용한 곳에서 당했다는 사실에 불쾌한 기분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물론 그 주유소는 지금도 영업하고 있고, 입구에는 정품, 정량을 판다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최근 음성지역에서 유사석유를 팔다가 적발된 여섯 곳의 주유소 중 다섯 군데는 사업정지 3개월을, 한 곳은 과징금 5천만 원의 처벌을 받았다. 100원 인하의 시효가 끝나고 나니 벌써 기름값은 들썩들썩하고 있다. 경유는 1,800원에 육박하고, 휘발유 가격은 2,000원에 근접하고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휘발유 가격이 높은 주유소 500곳을 뽑아 장부와 유통과정을 살펴보겠다.”라고 하며 정유업계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주유소 기름값은 요지부동이다.  

국내 휘발유 가격을 산정할 때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국제 휘발유 가격이 6월 한 달간 3.4%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나라 휘발유와 경윳값은 오히려 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고공 행진하는 기름값에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래도 서민들이다. 특히 생계형 운전자들의 고통이 가장 크다. 지난 15일 임종룡 기획재정부 1 차관은 정부 물가안정대책회의에서 “국제유가, 환율, 정유사, 주유소 마진 등을 감안해 기름값 할인 전과 비교할 때 정유사가 현 시점에서 기름값을 올릴 근거가 없다.”라고 주장했지만, 정유사에서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과 주유소에서 매입하는 가격이 서로 다르다고 정유사나 주유소는 볼멘소리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유사기름에 자동차가 망가지는 피해를 봐도 손해배상을 받기는커녕 버젓이 영업을 재개하는 주유소를 봐야 하니 이 또한 지루한 장마 끝의 폭염만큼이나 불쾌지수를 높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