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고마운 이유
농협이 고마운 이유
  • 문종극 <편집국장>
  • 승인 2011.07.17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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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문종극 <편집국장>

농협이 최근 모처럼 훌륭한 개혁을 단행했다.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되고 학벌위주의 사회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감히 개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농협중앙회가 13년 만에 고졸 행원을 채용하기로 했단다. 이를 위해 농협은 지난 15일 교육과학기술부와 특성화고 취업역량강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다음 달 중순까지 특성화고 졸업생 30명을 금융텔러로 채용하기로 했다.

농협이 고졸 행원을 채용하는 것은 1998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농협은 또 앞으로 지역 농축협에서도 해마다 고졸자 100명 이상씩을 지속적으로 채용할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기업·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5대 시중은행들도 하반기 중 모두 80여명의 전문계고교 졸업생을 신입행원으로 채용키로 했다. 이는 기업은행이 14년 만에 20명의 전문계고교 졸업생을 채용(상반기 중)해 내부적으로 예상 외의 성과를 얻은 데다 사회에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 기폭제가 됐다는 후문이다.

또 대전시 대덕구에서 컴퓨터와 가전제품의 열을 식혀 주는 '히트 파이프(heat pipe)'를 생산하는 에이팩은 출신학교를 보지 않는다. 아예 이력서에 출신학교를 적지 않도록 하고 있다. 오로지 열정만을 보고 채용을 결정한다. 청년들 사이에 좋은 직장으로 소문난 이 회사 전 직원 61명 중 24명이 고졸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학벌이 최우선시되는 우리나라에서 고교 졸업의 최종학력을 가지고 소위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졸이 아니면 어디 이력서조차 내밀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대졸만으로도 필요인력이 넘쳐나는데 굳이 고졸을 채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기업입장이고 사회적으로도 그렇게 인식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농협과 시중은행의 결정과 에이팩과 같은 기업이 얼마나 고마운가.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학벌위주의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개혁으로 평가할만 하지 않은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고졸 실업자는 42만명이다. 대부분 재학중 취직이 예약되는 마이스터고 21개교를 제외한 전문계고교가 전국에 691개교에 48만7000여명에 이르고 있어 이들이 졸업후 취업을 거의 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협과 시중은행, 그리고 소수의 기업들의 고졸 채용은 취업을 원하는 고교생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

사실 취업을 희망하는 고졸생들은 우리나라의 학력 과잉이라는 사회구조의 희생자다.

산업인력 수요는 변함없이 피라미드형임에도 배출되는 인력구조는 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많은 역피라미드 형태를 보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고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고졸 수준의 일자리도 대졸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졸들의 설 자리가 그만큼 없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13년 만에 고졸 채용을 단행한 농협을 비롯한 시중은행들처럼 기업들이 나선다면 이 같은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다. 전 산업에 고졸 채용이 파급된다면 무분별한 대학진학이나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 문제를 잠 재울 수 있고 비싼 대학등록금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특히 공기업과 대기업 등이 고졸 채용에 앞장서고 학력 간 임금, 승진 등 각종 차별을 없애는 제도 보완에 나서 준다면 고질적인 큰 사회문제 하나를 해결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하고 과열 사교육, 무분별한 대학진학 등의 난제를 기업의 학벌주의 타파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협이 고마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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