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자의 목소리
낮은자의 목소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0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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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중세기 가톨릭의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St.FRANCIS of Assisi 1181∼1226)를 들겠다.

그는 청빈의 삶과 뛰어난 설교로 가톨릭 신앙의 깊이를 더해 주었고 많은 개혁을 이끌었다.

성인은 특히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는데, 남겨주신 ‘평화를 위한 기도’에서는 평화를 지키는 인간의 자세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평화를 사랑했던 성인의 실천적 노력은 십자군 전쟁 때에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제 5차 십자군 전쟁 때에 프란치스코 성인도 십자군과 함께 이집트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전쟁의 참혹함을 보고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결심하기를 ‘나는 그들에게 가서 먼저 우리의 잘못을 빌고 평화를 맺겠다.

’사람들은 이러한 결심을 바보같은 생각이라 비웃었고 술탄에 가기만 하면 그들이 당장 그를 죽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비웃음을 뒤로하고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집트의 술탄 멜렉 엘 카밀을 찾아가 겸손하게 말한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당신들의 적이 아니고 형제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똑같은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 전에 어떠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던 ‘형제’라는 말에 술탄과 모슬렘들은 감명을 받는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머무르다 안전하게 돌아온다.

그 후 그의 수도회는 예루살렘에 머무르기 시작하여 아직도 모슬렘과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해도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갈등과 다툼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6월이 되면 갈라진 민족의 분단으로 인해서 아직도 상처받고 고통 받는 이들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이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을 하지만 현실의 상황은 어려워 보인다.

북한의 핵보유로 인한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고,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우리 사회는 아직도 편협한 이념적 갈등으로 혼란과 분열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은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있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체제의 승리와 항복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통일은 없다.

평화는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자기희생과 타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인위적이고 감정적인 통일은 더 큰 분열의 시작일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는 먼저 평화의 의미를 고뇌해야 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먼저 생각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용서를 청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고 그 결점을 덮어 준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 분노하지 않으며 참고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안다.

이제 통일이라는 인위적 구호를 외치는 사람보다 평화를 사랑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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