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의 어제와 오늘 <34>
무심천의 어제와 오늘 <3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0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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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량천
이번에는 무심천 지류중 가장 하류에 속한 ‘율량천’을 찾아 나섰다.

율량천은 내덕동 보성아파트옆 우암배수장과 사천동 복천탕 사이를 흘러 무심천과 맞닿는데 발원지를 찾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덕동 율량천 오른쪽에 시영아파트 왼쪽에 사천파출소, 사천교(1988년 준공), 중앙여중, 신라교, 충북인터넷고, 덕성교(밤고개에서 성모병원∼오찬∼진천방향 도로), 청주여고, 사천교(1979년 준공, 내덕동 6거리에서 충주방향도로), 율량파출소, 신흥고, 라마다호텔, 청주꽃동네, 동부우회도로 지하도를 통해 올라가면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상리가 나온다.

개울 흔적을 찾아 상리마을 안쪽으로 들어간 뒤 합수되는 지점에서 도랑이 좀 크다고 느껴지는 쪽인 왼쪽으로 올라가면 ‘보암사’ 가는 길인데 포장되지 않은 길을 덜컬덜컹 올라가면 보암사가 나오고, 다시 물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산속에 깎아지른 암벽이 나오고 이곳에 ‘폭포’가 형성돼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일명 ‘벼랑폭포’를 지나 더 올라가면 또하나의 폭포가 나오고 좀더 올라가면 산속에 전혀 생각지도 못할 ‘저수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안내판을 보니 이곳이 청주시 상당구 율량동 ‘상리 소류지(저수지)’라고 명명돼 있으며, 상수원이므로 오염시키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청주시장과 청주상당경찰서장 명의로 부착돼 있었다.

그럼 상리저수지에 물이 고일정도의 골짜기가 있지 않겠는가 싶어 저수지로 들어오는 물줄기를 찾아 김운기 편집위원과 함께 다시 산위로 올라갔다.

골짜기를 더듬어 올라가다보니 울창한 수풀사이로 골짜기는 형성이 돼 있되 그다지 물이 많이 흐르는 것은 아니었다.

평상시 이골짝 저골짝에서 조금씩 스며드는 물이 작은 실개천을 이루고 장마철이면 수량이 많아져 상리저수지로 흘러드는 것 같았다.

조금더 올라가 보니 상당산성 북문 아래가 되었다.

그렇다.

상당산성 북문쪽에 떨어진 빗방울이 북쪽 산골짜기로 흐르면 상리저수지로 모여들고 이물이 보암사를 거쳐 상리마을을 거쳐 율량동∼내덕동∼사천동∼무심천으로 10여리를 흐르는구나라는 짐작이 갔다.

상리저수지는 최근 준설작업과 둑보강공사를 해 물이 적었고, 여기저기 포클레인 등 중장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저수지 둑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율량동이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우뚝 솟아 보이는 것이 라마다호텔이고 그옆의 아파트까지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소나무와 잣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울창하게 들어차 있으며, 뻐꾸기 울음소리가 ‘뻐꾹 뻐꾹’하며 고즈넉한 6월의 한낮을 울리고 지나가 마치 산속깊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길을 돌려 상리저수지 바로 아래 위치한 ‘보암사’를 찾았다.

보암사 바로 옆으로 물줄기가 흐르고 조금 위에는 2단폭포가 있는데 일명 ‘벼랑폭포’라 불린단다.

지척이 시내인데 삭막하기만 한 이곳에 ‘폭포’가 있는 골짜기, 아니 절이 있다니 놀랄 일이다.

보암사 주지인 법호스님(여·60)은 보암사가 63년전(1943년)에 건립됐다고 한다.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또 스님들이 사찰을 확장하려고 하지 않아 겉으로 보기에 조그마하고 작은 절이지만 부처님을 모시고 깔끔하게 주변을 정리해 놓은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법호스님의 안내로 보암사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대웅전아래 노천에 있는 돌부처의 코가 납작하게 된 것이 눈에 띄었다.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스님이 “아기 못낳는 부부들이 코를 갉아가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폭포옆에는 기도를 하는 장소도 있고 폭포아래 작은 소(沼)는 ‘용궁’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

산속에 용궁이 있다니 참 아이러니컬 하다.

보암사는 봄이면 겹복사꽃이 만발하고 영산홍이며 각양각색 꽃들이 피어 그야말로 무릉도원과 같다고 한다.

그럴수 있겠다 싶다.

주변이 온통 울창한 숲에다 보암사 있는 곳만 빠끔히 공간이 나고 옆에는 골짜기의 물이 작은 폭포를 만들며 흐르고, 여기다가 꽃만 피면 무릉도원 아니겠는가.며칠 머무르며 도시와 세속에 묻은 찌든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고 맑고 순수한 상태로 귀가했으면 하는 욕망이 생겨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마음을 읽혔는지 법호스님이 “언제 여름철 가족들 데리고 피서하러 오시라”고 권한다.

보암사를 떠나 다시 상리마을로 내려와 이번에는 오른쪽 개울을 따라 산위로 올라가 봤다.

이쪽은 별다른 것이 없었고 골짜기 이곳저곳에 젖소축사와 사슴농장이 서너개 있고 조금더 위쪽에 밤나무단지와 허물어진 농가가 한채 있었다.

더 올라가보니 울창한 숲으로 골짜기가 덮여 있어 답사를 멈춰고 내려왔다.

동부우회도로 인근에서 상리마을을 올려다보니 양쪽 계곡사이로 둥근 언덕처럼된 산이 하나 있고 마을이 양쪽으로 흩어 형성된 것이 김운기 편집위원 표현대로 마치 ‘여근곡’이 연상됐다.

/글 김주철기자·사진 김운기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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