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농협의 '4억원대 상품권 잔치'
청주농협의 '4억원대 상품권 잔치'
  • 한인섭 <사회부장>
  • 승인 2011.06.29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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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인섭 <사회부장>

검찰 고발로 치달은 청주농협 '4억원대 상품권 제공'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던 농협 정체성과 운영 실태를 들여다 보게 한 사건이 아닌가 싶다. 법적 대표성을 지닌 감사 2명이 조합장을 비롯한 집행간부들을 고발한 일 역시 매우 이례적이어서 관심을 끌 만하다.

설 명절을 앞두고 조합원 4800여명에게 4억8000여만원의 상품권을 지급했다는 것이나, 가입 2년 미만, 거래실적이 거의 없었던 1150명까지 5만원권 2매씩 1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제공한 것도 일반인들이 보기엔 쉽게 이해하기 쉽지 않다.

조합원들에게 설 명절과 같은 특정 시점에 자재 교환권을 지급할 수 있다는 점은 농협 내부에서는 '관행'이라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출자금 납입 후 2년도 안 된 조합원 1000여명에게까지 지급하려던 사업계획에 이사회가 '선심성 사업'이라 제동을 건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인다. 결국 이 농협 조합장과 집행 간부들은 이사회 결의 내용과 달리 대의원 총회에서 승인을 받아 집행했고, 결국 말썽의 단초가 됐다.

상품권을 돌린 시점도 곱게 보긴 어렵다. 2011년 1월 18일 무렵은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돼 설 귀성조차 자제를 촉구했던 시점이다. 정부, 지자체, 농축협 모두 특별방역 대책을 세워 지원자금과 방역에 총력전을 펼칠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충북 최대 규모라는 농협이 '4억원대 상품권 잔치'를 했다면 누가 보더라도 곱게 봐 주긴 어렵다.

조합원 전체가 유권자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농협 조합장 선거는 여느 선거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말 많고 탈도 많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농협 조합장 선거'를 치면 금품살포, 돈 선거로 말썽이 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잡음이 많다. 선관위 조사와 수사 등 지방선거 초기 선거 행태를 보는 듯하다. 공직선거의 경우 금품을 받은 유권자까지 50배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강력한 처벌이 뒤따른다. 그러나 농협 조합장 선거는 법 개정 후 종전보다는 강화됐으나 느슨하긴 마찬가지이다. 조합 내부에서 이뤄지는 일이라 조합원이나 임원들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갈등'을 야기했다거나, 조직의 치부를 드러낸 것쯤으로 매도 당하기 십상이어서 '울타리'안에 갇히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도 사실이다.

청주농협 사례처럼 '환원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아예 사업계획까지 세워 진행될 수도 있다. 선심성 행정이라는 비난은 차치하더라도 농협법에 명시된 이익제공 행위나 사전선거운동 행위와 다를 게 뭔가. 환원사업이라 하더라도 조합원 영농과 생활 공동이익, 편익, 숙원시설 설치 등에 지원해야 하는 게 적절한 씀씀이 아닌가. 농협법과 내부 지침에 정통하지 않더라도 환원사업, 교육사업이 정한 기본 개념은 구성원(조합원)의 업무를 부양하는 취지로 집행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가령 농협의 경우 조합원의 생산활동을 도울 수 있는 농약, 사료 등 현물지급 방식이 타당하다.

이번 일은 '환원사업'을 명분으로 '자재구매권'을 지급했지만, 실상은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뭐든 교환할 수 있는 상품권이다. 돈의 흐름을 보면 금융사업으로 번 돈 일부를 조합원에 풀어 유통조직을 통해 다시 회수한 꼴이 됐다. 입버릇처럼 농민, 농업을 이야기하는 농협 환원사업에 두 개념은 쏙 빠졌다. 선심성 행정이 수그러들었다지만, 얼마든 가능하고 심각한 내부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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