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낙찰제'에 대한 불만
'최저낙찰제'에 대한 불만
  • 남경훈 <편집부국장>
  • 승인 2011.06.28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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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편집부국장>

주택건설경기 침체로 굴지의 대형 건설사들조차 맥을 못추고 있다. 관급공사에 의존해 오던 지방 중소건설사들은 발주물량 급감으로 바닥을 헤매고 있다. 당연히 하도급을 받는 전문건설업체들은 힘들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의 한 축을 형성하는 건설업의 침체가 요즘 발등의 불이다. 자치단체도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는 현실에서 뾰족한 대안을 마련치 못하고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 정부가 내년부터 최저가낙찰 대상 공사를 현재 300억원 이상 공사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확대 시행해 나갈 계획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 돼 버린 것이다. 왜 하필 최악의 상황에서 이런 조치를 취하냐고 불만이 팽배하다. 건설업계는 이미 100만인 서명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저가낙찰제(最低價落札制)는 말 그대로 공사나 물품납품 입찰에 있어 가장 낮은 가격을 써 낸 낙찰자를 선정하는 것이다. 즉 동일한 조건하에서 다수의 입찰 참가자 중 단순히 입찰가격을 최저로 제시한 자가 낙찰자로 선정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낙찰시점에서는 시공비를 줄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무리하게 저가로 낙찰되면 유지관리비와 하자보수비가 증가하고 부실시공으로 인한 품질논란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 원청사의 수익감소가 하도급업체에 전가돼 불공정거래 시비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을 발생시키면서 이 제도의 피해는 대부분의 건설업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실제로 2010년 기준 국내건설업체들의 평균 이자보상비율이 49.9%로 산업전체평균인 642.3%의 1/10에도 못 미치고 있다. 수익금에서 빌린 금융비용을 갚아야 하는데, 건설업체들은 벌어서 이자를 절반도 못 낸다는 뜻이다. 이런 지경에 정부가 최저가낙찰제를 확대 시행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제도가 확대될 경우 총공공공사의 70%(약 27조원)가 이 방식이 적용돼 입찰 경쟁률이 40대 1에서 150대 1로 증가해 과당·출혈경쟁뿐 아니라 덤핑투찰이 성행할 수밖에 없어 건설사의 채산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결국 최저가낙찰제가 확대되면 건설산업의 기반이 붕괴될 수 있다.

특히 현재 300억원 미만 공공공사의 80%가량을 수주하고 있는 지방 중소건설사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더욱 우려스럽다. 여기에 고용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산업재해 증가의 원인이 된다. 2009년 공공공사에서 산재가 많이 발생한 상위 10% 현장 21곳 중 19곳(90.5%)이 최저가낙찰대상 현장이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보니 선진국들도 점차 이 제도를 폐지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유럽연합국들이 조달제도에서 최저가낙찰제를 폐지하고 대신 최고가치낙찰제를 도입했다. 일본은 오히려 최저가낙찰제보다 가격과 품질, 기술력을 종합평가하는 종합낙찰제가 일반화돼 있다. 미국도 가격을 중요시하지만 공법과 입찰자의 과거 실적 및 수행역량을 더 중시한다.

아직도 "국내 공공공사에 50%이상 가격 거품이 있어 100억이상 공사로 확대해도 절대 손해 볼 수 없다"는 70년대식 건설업 분위기에 사로잡힌 무지한 정책결정자들이 많다는 대목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3800년 전 인류 최초법전인 함무라비법전에도 건설공사 거래에 대한 규정은 안전과 품질을 보장하는 선에서 거래가격을 명시해 놓았을 정도로 최저가격보다 최고가치를 더 중요시해 왔다는 점은 곱씹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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