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식은 아니였지만…
주먹구구식은 아니였지만…
  •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 승인 2011.06.2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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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조한필 부국장<천안·아산>

2005년 10월 천안시청 공무원직장협의회로부터 기사 정정보도를 요구 받은 적이 있다. 시가 천안서 열린 전국국민생활축전의 지역경제 생산유발 효과를 127억원으로 산출했는데, 이것을 '주먹구구식 계산'이라고 표현한 게 '왜곡보도'라는 것이었다. 과도한 표현임을 인정했다. 적어도 127억원을 손가락 접었다 폈다 하면서 계산(주먹구구)하진 않았을 테니까.

그렇지만 생산유발 효과 산출의 부정확성에 대한 기사 지적은 옳았다. 당시 시는 지역의 모 대학에 효과 분석 용역을 줬다. 127억원이란 수치는 선수단과 관광객이 쓰고 간 직접비를 생산유발 효과 산출 '공식'에 넣어서 뽑아낸 것이다. 그런데 관광객이 쓰고 간 비용 산출에 문제가 있었다. 많은 관광객이 천안 인접 시·군에서 왔을 텐데 관광객들이 모두 천안서 하루 숙박한 것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 결과 숙식비로 선수 2만명은 2박3일씩 39억원, 관광객 5만명은 1박2일씩 37억원을 썼다고 한다. 관광객 수 5만명 산출도 정확하다고 볼 순 없었다.

대학 때 사회통계를 가르치던 교수가 소개한 책이 생각난다. 『How to lie with statistics』 번역하자면 '통계로 거짓말하는 법' 정도 될까. 통계 수치를 전적으로 믿어선 안 된다는 취지로 일러준 것이다.

용역(用役)이란 외부 전문집단의 능력(役)을 빌려 쓰는(用) 걸 말한다. 시 공무원이 모든 분야 전문성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용역 결과가 상식 수준에 머물거나 상식에서 벗어날 때가 종종 있다. 앞서 든 예가 상식을 벗어난 경우이고, 용역 보고서가 '이 정도면 나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게 할 땐 상식 수준에 그쳤을 경우다.

용역은 사업의 방향을 정할 때, 혹은 특정 사업의 타당성을 따질 때 주로 한다. 그런데 본래 목적보다 시가 하고 싶은 사업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싶을 때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최근의 천안문화재단 설립 타당성 용역은 이 포장술마저 서툴렀다. 발표장에서 용역기관 관계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됐고 해당 간부 공무원들이 앞다퉈 질문에 답변했다. 한 참석자가 "누가 용역을 맡은 거냐"고 꼬집을 정도였다.

세금 낭비의 전형으로 지목받은 용인경전철은 최초 예상 승객 산출이 엉터리였다. 외부 용역기관에서 15만3000명을 잡았는데 실제론 끽해야 5만명 선이란 것이다. 경전철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용인시에 부합하려다 보니 수요 예측이 부풀려진 것이다.

천안시 경전철사업 용역에선 수요가 하루 6만1566명으로 예측됐는데, 이는 아산신도시 2단계 사업과 국제비즈니스벨트 조성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는 가정에서였다. 현재 신도시 2단계는 좌절됐고 국제벨트는 불투명하다.

최근 천안 원도심을 살리는 복합테마파크 사업 콘셉트 용역이 다시 시작됐다. 수십층짜리 최고층 주상복합빌딩을 세운다는 첫 용역 결과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애초부터 "주변 여건을 볼 때 누가 비싼 돈 주고 들어와 살겠냐"는 등 말이 많더니. 시청 옮긴 지 만 6년이나 흘렀는데 원점서 다시 출발이다.

천안시는 지난해 36건 용역비로 총 206억원을 썼다. 전년보다 39억원이 늘었다.'비싼 용역'이 툭하면 하는 통과의례가 돼선 안 된다. 불필요한 용역은 줄이고, 많은 돈을 주더라도 믿을 만한 기관에 맡겨 믿을 만한 결과를 얻어내자.

한데 한 공무원의 항변이 귓전을 때린다. "기자님들이 용역 거친 사업이라야만 믿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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