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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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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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결한 영혼은 먹지처럼 묻어난다.

가령 오늘 점심에는 사천 원 짜리 추어탕을 먹고 천 원짜리 거슬러 오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까박까박 조는 남루의 할머니에게 ‘이것 가지고 점심 사 드세요’ 억지로 받게 했더니, 횡단보도 다 건너가는데 ‘미안시루와서 이거 안받을랩니다’ 기어코 돌려 주셨다.

아, 그걸 점심값이라고 내놓은 내가 그제서야 부끄러운 줄 알았지만, 할머니는 섭섭다거나 언짢은 기색은 아니었다.

어릴 때 먹지를 가지고 놀 때처럼, 내 손이 참 더러워 보였다.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열림원) 중에서<감상노트 designtimesp=10672>아니다, 순결한 영혼은 먹지처럼 빛이 난다.

사천 원 짜리 밥을 먹고 배불렀을 시인이다.

하기야 미꾸라지의 목숨이 몇이나 날아간 것인데 배부르지 않으면 되겠는가. 천 원이 주머니에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가난한 자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까박까박 조는 할머니에게 전 재산을 털어드린다.

덤으로 덕담 비슷한 말을 했으니 또 얼마나 정신이 배불렀을까. 그러나 기·여·코 돌려주는 할머니에게는 공짜가 미안한 일이었으니 어쩌랴. 이 한 장의 흑백사진이 아름다운 것은, 가난이 이룬 생이 언짢은 일 아니라는 것. 먹지 묻은 손이 더욱 그리운 빛바랜 사진 속의 유년이 떠오른다.

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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