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날씨 <21>
신화속의 날씨 <21>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0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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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설 자리가 좁아질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하리라.”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여신 레토를 건드려 임신시키자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아이가 태어나면 자신의 입지가 약화될 것이라는 신탁에 따라 집요하게 방해를 했다.

아이를 유산시키려는 헤라의 방해를 피해 레토 여신은 델로스(Delos) 섬으로 도망친 끝에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아폴론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건장한 젊은이로 성장하여 곧장 아버지 제우스를 찾아갔다.

아들을 반갑게 맞은 제우스는 아폴론을 올림포스의 2인자로 인정해 주었다.

아폴론은 태양을 관장하고 예언, 음악,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모든 날씨 변화를 가져오는 힘은 태양에서 나온다.

그러기에 태양의 신 아폴론은 날씨와 밀접한 신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양의 신 아폴론을 짝사랑한 소년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미의 여신 비너스의 아들 크리무농이다.

최근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박을 터트린 영화 ‘왕의 남자’나 2006년 아카데미 3개 부문대상을 받은 ‘브로크 백 마운틴’은 남자간의 동성애를 다루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관심을 끌었다.

아폴론을 사랑한 크리무농의 이야기처럼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동성애가 이성간의 사랑보다 더 신성하고 진실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여성과의 사랑은 생식을 위한 행위에 불과하고 동성과 하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으로 생각한 신들도 있었다.

아폴론을 짝사랑했던 소년은 태양빛이 환하게 떠오르면 춤을 추며 즐거워하다가 저녁이 되면 외로움으로 밤을 지새웠다.

소년을 바라보던 태양의 신 아폴론도 소년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둘 사이를 지켜보던 구름의 신이 질투를 하기 시작했다.

구름의 신은 태양의 신을 여드레 동안 구름 속에 가두어 소년이 태양을 보지 못하게 했다.

태양을 보지 못한 소년은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죽고 말았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아폴론은 죽은 소년을 금잔화로 환생시켜 주었다.

태양의 신을 사랑해서인지 금잔화로 변한 소년은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꽃들이 날씨에 반응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민들레나 데이지가 습도에 반응하는 꽃이라면, 금잔화는 빛에 반응하는 꽃이라고 할 수 있다.

금잔화는 구름이 끼면서 햇빛이 나지 않으면 정확하게 꽃잎을 오므린다.

서양에서 ‘만약 금잔화가 아침에 개화하고 오후까지 닫히지 않는다면 맑은 날씨를 기대해도 좋다’는 속담이 전해오는 것도 이에 연유한 것이다.

대개 낮에 구름이 끼면서 햇빛을 가릴 때는 기압골과 연관된 경우가 많으므로 금잔화가 꽃잎을 오므리면 비가 올 확률이 높아진다.

금잔화가 아침 햇빛에 꽃잎을 여는 것도, 언제나 처럼 태양을 향해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것도 소년이 태양을 변함없이 사랑해서라고 한다.

금잔화는 꽃 모양이 금잔(金盞)과 비슷하게 생겼으며, 금송화라고도 불린다.

남유럽이 원산이며 관상용으로 많이 심고 있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높이가 30∼50cm이고 가지가 갈라지고 전체에 선모(腺毛)같은 털이 있어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잎은 어긋나고 잔 톱니가 있으며, 밑 부분은 원줄기를 감싸고 있다.

여러 해 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조차 질기게 버티며 자라날 정도로 토지가 척박할수록 더 빠르고 강하게 퍼져나간다.

“그들은 곧 궁핍과 기근으로 파리하매 캄캄하고 거친 들에서 마른 흙을 씹으며 떨기나무 가운데서 짠 나물도 꺾으며 금잔화 뿌리로 양식을 삼느니라”는 욥기서의 기록처럼 중동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이 뿌리를 양식으로 먹기도 한다.

학명으로는 Genista aspalathoides로 불린다.

금잔화 뿌리는 질소를 강화하는 박테리아, 토양균류와 공생하여 토양을 개선시키는 좋은 일도 하며, 또 불씨를 24시간이나 유지해주는 좋은 땔감으로도 알려져 있다.

금잔화의 뿌리는 질긴 섬유로 되어 있어 스페인에서는 배의 밧줄을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해의 신을 사랑했던 크리무농이 죽어서도 해 만을 바라보는 지조를 보여서일까, 금잔화는 지조와 겸허, 끈기의 상징으로 불린다.

중세 유럽에서는 금잔화를 가문의 상징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양주와 멘의 영주였던 고트프리드는 십자군 맹세 후에 그의 투구에서 자랑스럽고 오만한 깃털 장식을 뽑아 버리고 기독교 교회에 겸허하게 헌신하겠다는 표시로 금잔화 가지를 대신 꽂았다.

금잔화의 라틴어 이름인 ‘플랜태저넷’을 작위에 덧붙인 이 가문은 이후 300년이 넘도록 영국의 왕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프랑스의 루이 9세는 그의 부인 마가레트를 기념하기 위해 ‘금잔화 훈장’을 만들었다.

훈장에는 다음의 글귀를 새겼다고 한다.

‘Deus exaltat humilis(신은 비천한 것을 높이신다)’금잔화는 그리 화려하거나 돋보이지 않는 꽃이다.

그렇지만 다른 식물들이 적응하지 못하는 황량하고 척박한 사막에까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식용으로 도움을 주거나 마음에 위안을 주기도 한다.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인내와 끈기 외에도 낮춤과 겸손이 우리가 금잔화에서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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