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유월은
아무래도 유월은
  •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 승인 2011.06.16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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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아무래도 유월은. 우리가 무심하려 해도 아무래도 유월은, 내 마음보다 더 진한 '우리'가 있다.

그것이 비록 서로의 날개가 서로 다른 빛깔로 펄럭거린다 해도 유월은 우리 가슴을 알게 모르게 두 방망이 치는 아련한 서러움이 있다.

그해 유월, 우리는 처음으로 열리는 평양 순안공항의 실체를 봤고, 그 열광의 사회주의를 봤으며, 그리하여 비로소 그들도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전 유월, 우리는 세상이 어쩌다가 이런 일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처절함으로 몸서리 떨어야 했다.

나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포탄과 총알을 피해 오로지 살아 남을 수밖에 없는 본능으로 남으로, 또 남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는 처절함으로 경험했던 한반도의 전쟁은 지금도 너무나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그 유월이 지금도 서글프게 충돌하고 있다.

작가 황석영은 북한을 다녀왔다.

서슬 퍼런 시절, 현행 법상 밀입국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그 현실을 그는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의미심장함으로 표현했다.

우리가 절대 상종할 수 없을, 그리하여 사람도 아닌, 절대로 사람일 수 없는 존재들로 채워진 것으로 여겨왔던 그곳. 북녘 땅에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있고, 엄연히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그 책은 어쩌면 북한, 아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체제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본질의 회복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정권은 바뀌었고, 우리는 아직 여전히 사람을 구별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광장에서 지독하게 서러웠던 우리끼리의 모순에 허덕이면서 소통을 갈구하는 서성거림의 한복판에 있다.

그해 유월,

우리는 가슴을 열었고, 그 가슴속에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는 한 핏줄의 뜨거움을 확인했으며, 그리하여 그들도 사람임을 비로소 알아차리는 생물학적인 경험을 했다.

머리에 뿔이 나 있고 얼굴은 온통 빨갱이인 것으로 여겨졌던 가식적 상징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난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임을 알아차리게 된 것은 아무래도 유월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신록의 푸름만큼이나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서로가 서로를 살육하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며, 그로 인해 서로 서로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그 처절함은 아무래도 유월을 우리가 간단할 수 없게 하는 또 다른 고통일 수 있겠다.

얼마 전 타계하신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엄연한 '사실'을 늘 강조해 왔다. 모든 것이 한쪽으로 치우쳐 한쪽의 목소리만 득세하는 세상이 온전한 이치와는 맞닿을 수 없다는 절망의 시절, 그 통분의 표현은 그럼에도 우리에게 유월은 아무래도 그 서글픔만큼이나 진한 '우리'로 기억되고 있다.

광장의 '우리'이거나 몽니를 부리면서 늘 우리를 낚시질하는 그들, 그리고 그 위태롭기 그지없는 가난에게 굴복하라, 굴복하라 강요하는 세상도 마뜩지 않다.

차라리 산딸기 익어가고 뻐꾸기며 소쩍새, 밤낮을 교차하며 울어대는 고향 산천에서 그야말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는 일이 아무래도 유월엔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지금 유월의 한복판에서 나는 내가 겪었던, 아니면 얘기로만 들었던 그 여러 가지의 피 흘림보다 더 진하게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판화가 이철수의 휴머니즘이 더 절절하다.

아무래도 유월은, 그 햇살만큼이나 온몸으로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로 나를 위로하는 것이 어떨지.

나는 오늘 텅 빈 우체통을 뒤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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