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에 대한 추억
'반값'에 대한 추억
  • 남경훈 <편집부국장>
  • 승인 2011.06.1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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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편집부국장>

대학을 '상아탑(象牙塔)'이 아닌'우골탑(牛骨塔)'이라고 불렀던 때가 있었다.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를 팔았다는 데에서 유래했다. 요즘에는 자녀를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부모의 등골이 휜다고 해서 '등골탑'으로 불린다. 아예 '미친 등록금'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1975년부터 2010년까지 35년간 4년제 국공립대 등록금은 30배, 사립대는 28배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35년 동안 주식(主食)인 쌀은 6배, 소주는 10배 올랐다. 같은 기간 전세금이 11배 오른 것과 비교해도 대학 등록금의 상승세는 아주 가팔랐던 셈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선 무엇이든 '반값' 이란 단어를 쓰면 귀가 솔깃해진다.

우선 서민들에게 등록금 반값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물가가 올라 살기 팍팍한데 정부와 여당이 가격인상을 통제하고 대학 등록금마저 반값으로 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니 충분히 환영받을 만한 일이다. 반시장적일지는 모르지만 더 내리고 더 깎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속마음이다.

당장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외에도 이왕 도입할 정책이라면 지속적으로 추진되기를 소망한다. 그래야만 어느 순간 혜택이 끊기면서 배제된 사람들의 불만이 쌓이는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면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한다면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 때 여당이건 야당이건 관계없이 그쪽에 한 표를 던지겠다는 것이 국민들의 지금의 마음이다.

하지만 이런 희망 섞인 기대보다는 또다시 실망하고 갈등만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앞선다.

벌써부터 현실적인 해결안을 생각해 보고 대안을 내놓지 않은 채 대학은 문제 없다고 그냥 깔아 뭉개려고 하고 있고, 정치권은 선동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 또 한쪽에선 무조건 반으로 깎으라고 막무가내 농성을 하고 있다.

'반값'의 원조는 19년 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내걸었던 '반값 아파트'다. 아파트가 국민들의 주요 주거형태로 자리를 잡고, 분양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시기였다. 당시 아파트 값은 건설회사의 분양가격이 반, 채권입찰제 시행에 따른 채권액이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채권액만 없애면 반값이 가능하다는 명쾌한 논리가 있었다. 그러나 정 후보가 낙선,'반값 아파트'는 물 건너갔다.

지난 2006년 다시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르자 '반값 아파트 정책'이 부활됐고, MB정부 출범 직전에 '1·11대책'이 발표됐다.

그중 대표가 보금자리주택이다. 벌써 5차 보금자리 지구가 선정됐지만 당초 목표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강남권 한두 개 지구에서만 시세의 반값에 공급됐을 뿐 어느 순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과도한 부채를 해소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세의 85%까지 높일 수 있도록 조정됐다. 물론 민간아파트에서는 엄두도 못 낸다.

이제 반값에 나올 수 있는 아파트를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돼 버렸다.

이번 '반값 등록금'도 현실적인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대학 간의 구조조정, 부패·비리 척결과 적립금 조정, 간판 위주의 사회 통념 등 기본적 환경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경험적인 결론이다.

정치권이 화두를 던진 만큼 현실적인 대안을 이제 찾아야 할 때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두고 표를 의식한 논쟁은 이제 접어야 한다. 반값 등록금은 대형마트의 선착순 한정판매용 미끼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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