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총장의 자살
임 총장의 자살
  • 이재경 부국장<천안>
  • 승인 2011.06.14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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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서울대 행정학과 졸업, 행정고시(17회) 합격 후 공직에 입문, 과학기술부 차관, 국무조정실장, 농림부장관. 1975년부터 서슬 퍼렇던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노태우 시절을 거쳐,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무려 6개 정권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던 화려한 경력의 행정가가 인생을 자살로 마감했다.

13일 오전 전남 순천 자신의 선산에서 목숨을 끊은 임상규 순천대 총장. 유서에는 "악마의 덫에 걸려 빠져나가기 힘들 듯하다.", "잘못된 만남의 결과가 너무 참혹하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그는 검찰로부터 지난 3일 출국 금지 조치를 당하고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있었다. 혐의는 이미 '함바' 비리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식당 운영업자로부터 수천 만원을 받았다는 뇌물수수. 검찰은 유씨 등으로부터 임 총장에게 돈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서에서 그는 "금전 거래는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유서상에 비친 그의 자살 원인은 수치스러움 때문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더 이상의 수치도 감당할 수 없다"고 유서 말미에 썼다.

검찰은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그를 업자와 뇌물 고리에 있는 비리 인사들을 연결해 준 중요 인물로 보고 수사망을 확대하는 상황이었는데 돌연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허탈해 하고 있다.

고위층 인사의 자살에 대한 세간의 반응도 다시 뜨거워졌다. 급히 편성된 한 라디오 프로그램은 14일 임 총장의 자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자살 신드롬을 다시 진단했다. 출연자는 대통령에서부터 재벌 1, 2, 3세, 장관, 대기업 사장, 명문대 학생 등의 자살을 되짚으며, 병의 일종인 자살의 사회적 치유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수치심을 못 이겨 자살을 선택한 사례는 많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대학 1년생이 자신의 동성애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자살했으며, 국내에서도 최근 모 아나운서가 운동선수와의 열애 사실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악플'에 시달리자 자살을 선택했다. 사회 저명인사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두산그룹 박용오 전 회장,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등 부지기수다. 이들의 자살은 대부분 감당할 수 없는 명예의 훼손으로 수치심을 느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다.

문학작품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박경리의 토지를 보면 평사리에서 청상과부로 신실하게 살던 복동네가 이웃의 모함을 받고 억울해 한 나머지 자살로써 결백을 증명한다.

악질 이웃인 봉기가 한 말이 원인이 됐는데, 자신이 20여 년 전 쌀 한 말을 받고 몸을 팔았다느니, 봉기의 딸이 겁탈을 당한 사실을 자신이 퍼뜨렸다는 등 모함을 받자 결국 누명을 벗겠다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역시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애절한 죽음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 자살 국가인 이유는 오랜 세월 이어진 유교적 이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2300년 전 맹자는 인간 본성의 으뜸으로 부끄러움을 꼽았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란 뜻은 곧 최대의 모욕이었다.

"더 이상 수치를 감당할 수 없다"고 자살한 임 총장이 남긴 유서의 진정성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금전거래가 없었다'고 쓰인 게 진실인가 하는 부분인데 검찰 일각에서는 이마저 의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그럴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유서의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세태,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개탄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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