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학생들에 대한 6월의 소묘
대학, 대학생들에 대한 6월의 소묘
  • 충청타임즈
  • 승인 2011.06.0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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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一筆
초여름의 이른 더위와 함께 시작된 대학생들의 등록금 반값투쟁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연초가 되면 늘 있어 왔던 '그러다가 말겠지' 수준을 이번엔 보란 듯이 깨고 있는 것이다.

6·10 민주항쟁 24주년을 맞는 오늘, 과연 대학생들이 예고된 대로 거리로 나설까도 궁금하지만 정작 많은 사람들은 그 상징성에 대해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학생 운동이 치열했던 7, 80년대, 당시 거리로 뛰쳐 나왔던 대학생들에겐 으레 관제언론에 의해 개념없는 '이상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에 매몰됨으로써 사회변혁보다는 오히려 사회혼란의 주체라고 매도된 것이다. 기득권 층의 논리는 이의 범주를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고 그 백미는 역시 학생들에게 포괄적(?) 빨갱이의 굴레를 씌워 사회와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의 학생운동은 먹고 살기의 원초적 생존문제가 아닌, 이념의 카테고리에서 전개됐다. 독재와 민주라는 대립구도하에 국가체제의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 학생운동의 최대 목표였고, 그 성과가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시킨 6·10 민주항쟁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러한, 일종의 전통적 가치의 학생운동은 이후 사양길로 접어든다. 급격한 산업화 및 사회분화에 편승해 대학생들의 관심도 탈(脫)이념의 양태를 띠게 된 것이다. 개개 대학이나 지역단위의 집단행동이 간헐적으로 돌출됐을 망정 7, 80년대와 같은 전국적 연대운동은 자취를 감췄다. 아예 사회참여에 대한 감각을 잃었다고 봐야 옳다.

국민운동이 촉발됐던 2002년 여중생 미군장갑차 압사사건,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때도 대학생들은 저항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돌 뿐이었다. 이랬던 그들이었는데 지금 다시 등록금 문제를 들고 나와 동맹휴업을 결의하고 촛불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이번 등록금 투쟁은 접근 명분에서부터 과거와는 엄연히 다르다. 지금은 돈(錢), 아니 원초적인 생존의 문제로 학생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88세대(월급 88만원)와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극도의 박탈감도 부족해 '1000만원 등록금'이라는 굴레에 짓눌려 청춘은 물론 인생 자체를 망가뜨릴 수밖에 없는 이들의 외침은 바로 생존을 위한 절규나 다름없다.

생존문제가 이념으로 무장되면 그 파괴력은 비약적으로 커진다. 러시아 혁명이 그랬고 동학혁명이 그렇다. 둘 다 먹고 사는 문제로 민중들이 공분을 키워가다가 이를 이념으로까지 무장시켜 혁명의 싹을 틔운 대표적 사례다.

반대로 제 아무리 견고한 이념의 무장도 먹고 사는 생존 앞에선 하시라도 무력화될 수 있다. 구 소련의 붕괴가 그랬고, 지금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거다.

그렇다면 상아탑의 지성과 낭만에 푹 빠져 있어야 할 우리의 대학생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거리로 뛰쳐 나오고 시민단체, 주부들까지 이들과 대열을 같이 하려는 지금의 형국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단순히 집회를 막는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은 이미 지났음을 시사한다.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 6월 항쟁에서도 처음부터 직장 중년들이 나선 게 아니다. 대학생들의 거리투쟁에 박수를 보내다가 어느덧 주역으로 등장했다.

등록금을 내세워 학생들의 알바비까지 착취하는 대학들이 이것으로 적립금을 쌓아 건물이나 짓고 자자손손 재단까지 대물림하는가 하면, 교직원의 월급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된 현실에선 시민단체와 주부뿐 아니라 그 누구도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2011년 6월, 초여름의 더위가 더욱 부담스럽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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