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家業)
가업(家業)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1.06.0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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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병든 소 해장국집'이라는 단어가 올랐다. 좋은 일도 아닌데 메인에 떠 있는 기사를 보니 청주에 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늦은 시간 거나한 취기에 대리운전을 불러 집에 돌아오는데 기사 분도 뉴스를 보았는지 "손님 혹시 아세요? 청주의 유명한 해장국 집이 병든 소를 불법 도축해 해장국을 만들어 팔았다는데······."

청주의 유명한 해장국이 몇 집이 있다. 아침에 궁금해서 이리저리 검색해 보니 어렵지 않게 그 식당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궁금해 하는 대리기사에게 그 식당이름을 말하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 기사 분은 전혀 다른 해장국집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분개한 말투로 "밤늦게까지 대리운전을 하고 나면 출출해 그 해장국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들어갔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하며 몹시 화를 낸다. 직업의 특성상 새벽에 일이 끝나니 먹을 음식도 마땅치 않고 하니 손쉽게 먹을 수 있고, 24시간 문을 여는 해장국집이 제격이었을 것이다. 대화하다 보니 이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해장국집이 오해를 받아 장사에 많은 타격을 입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주·청원·청주의 99학교에 병든 쇠고기가 학교 급식으로 납품되었다니 초등학교 다니는 우리 아들 녀석들도 십중팔구는 그 고기를 먹었을 것이다. 병든 쇠고기를 먹었다고 당장 무슨 탈이야 나겠는가마는 이해되지 않는 것은 1943년도에 문을 열어 70년 가까이 지역의 대표적인 식당으로 이름도 있고 오랜 세월 이어 온 전통과 자부심이 있을 법한 식당에서 벌어진 일이라 더욱 당혹스럽다.

일본에서는 오랜 세월 가업을 이어온 장수기업을 '시니세(老鋪)'라고 부른다. 100년이 된 기업부터 길게는 1400년 이상이 된 기업이 존재한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중 대표적인 기업이 오사카에 본사를 둔 곤고구미(金剛組)라는 토목건축회사다. 이 회사는 AD 578년 창업해 현재 1432년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불교를 중흥시킨 쇼도쿠(聖德) 태자가 백제로부터 초청한 목수들 가운데 한 명인 금강중광(金剛重光)이 창업했다고 한다. 이때 한반도는 백제의 위덕왕이(AD 554~598) 신라와 고구려와의 전투에서 거듭 패해 대륙 백제의 위상이 사라지고 점차 국력을 잃어가는 시기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기업이 이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있다는 것만 보아도 장구한 시간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밖에도 1000년 넘게 가업을 이어 숙박업을 하는 집이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가업은 길어야 3~4세대를 넘지 못한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유교적 신분질서 탓에 장사를 천하게 보는 눈이 지배적이었다. 대접을 못 받은 직업에 뚜렷한 사명감이 없으니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무슨 일이든 삼대를 넘어가기가 쉽지 않다. 부모가 일군 것을 목격한 자식들이야 흔들림이 없지만, 웬만큼 기반을 잡은 후 태어난 손자들은 부를 향유할 뿐 고생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삼대를 넘기기가 쉽지 않다. 맛이야 흉내 낼 수 있지만 처음 장사를 시작하던 초심을 대를 이어 갖기는 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음식점으로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변함없는 음식 맛도 있지만, 잊지 않고 찾아와 주는 단골이 있기에 가능하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해가도 그 옛날의 입맛을 못 잊어 추억을 쫓듯 찾아오는 손님의 마음씨도 헤아려야 한다. 돈으로 사고 파는 장사를 넘어 정과 세월로 농익은 그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해장국집은 사람이 북적되는 장터 음식이다. 텁텁한 막걸리처럼 사람 냄새와 떠들썩한 장터 냄새가 나는 음식이다. 5일마다 찾는 반가운 만남이다. 모자라면 국물을 덤으로 더 부어주는 인정이 있는 음식이 해장국이다.

이제는 그런 인정조차 메마르고 국물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초심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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