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復古)를 노래하노라
복고(復古)를 노래하노라
  •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 승인 2011.05.2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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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저녁 무렵 어느 선술집. 50대 중반은 훌쩍 넘겼을 사내 셋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사는 일의 고단함과 허허로움, 그리고 권태로움마저도 술잔에 탈탈 털어 넣으며 시름하던 이들이 일순 호기를 부린다.

그런 호탕함의 단초가 된 화제는 느닷없게도 '조용필'이라는 이름.

순간 내 귀의 감각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이야기로 집중된다. 나는 그들의 입에서 '조용필'이라는 고유명사가 나오기 전까지 그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살아가는 일에 쪼들려 그렇고 그런 정치 얘기이거나, 혹은 한때나마 화려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그저 그런 사내들이겠거니 했다. '조용필'이라는 이름은 도저히 그들과는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문화와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부류임이 분명한 것으로 예단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용필을 얘기했고, 조용필의 노래에 대해 의기투합했으며 공연장을 찾아 그 노래와 몸짓에 모처럼 가슴을 열어젖히자는 데 뜻을 모았다. 무엇이 그들의 늙은 가슴을 이처럼 벅차게 했을까.

최근 들어 복고(復古)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70년대 젊음을 열광시키던 '세시봉'이 다시 한 번 눈과 귀를 쫑긋하게 하더니 MBC의 주말 오락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가 시쳇말로 트렌드가 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댄스음악 위주의 소위 10대 가수들에게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껴 왔다. 바라보기만 해도 풋풋한 그녀들과 그 녀석들의 몸짓과 흥겹기 그지없는 리듬은 노래가 아닌 립싱크일지라도 그냥 좋아 보였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는 마치 내 얘기인 것 같은 애절한 노랫말의 실종을 아쉬워했고, 가슴이 아닌 몸짓으로 감각이 자극되는 것에 나름 만족해 왔다.

'나는 가수다'가 이처럼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하는 것은, 그리고 조용필이 중년의 사내들을 긴장하게 하는 것은 그동안 이런 10대들의 몸짓에 종속될 수밖에 없던 TV의 현란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해방구나 다름없다. 발랄함과는 차원이 다른, 눈을 감고 그저 듣는 감각만을 잔뜩 긴장시켜도 눈과 귀를 다 빼앗기는 것보다 더 큰 감동이 그 '가수'들의 절절함을 통해 저절로 밀려온다. 그것은 어쩌면 아련한 향수의 자극일지도 모르겠다.

3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영화 '써니' 역시 복고다.

중년이 된 여인네들이 여고시절을 회상하는 이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고 그렇다고 쉽사리 무거운 감동을 허용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영화 속 이야기에는 귀에 익은 그 당시의 노래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하면서 빙글빙글 흘러나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추억의 아련함으로 콧잔등이 시큰해짐을 느낀다.

만화가 강풀 원작의 만화를 영화로 만든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또 어떤가. 그저 모든 감각과 감정이 무뎌졌을 거라 여겨왔던 노년의 애틋하다 못해 가슴 저린 사랑은 결코 세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며 우리를 차라리 눈물겹게 한다.

복고(復古)는 대개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그 어려움을 쉽게 토로하기 힘들 때 나타난다.

그리고 그 되돌아가고 싶음은 현실보다 훨씬 아름답고, 현재보다 더 화려하며 무엇보다도 진정성이 있다. 그리고 그 아련함에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간절함이 배어 있으며, 추억과 함께 서정성 짙은 낭만이 있다.

아! 조용필. 나는 오늘 저녁 무렵 선술집에서 의기투합한 그 중년의 사내들처럼 한 마리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어 복고(復古)를 노래하노라. 그리고 뛰는 가슴 억누르며 그날, 6월 11일 '토요일 밤의 열기'를 숨죽여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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