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날이 다시 오면…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 승인 2011.05.1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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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부국장<보은·옥천>

그날, 나는 충북 보은에 있었다.

잦은 기침을 만들어내는 오래된 가래처럼 우리에게 들붙어 있는 군사독재의 서슬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에도 '서울의 봄'은 서러웠고, 나는 그 하루 전 거리시위를 끝내고 친구 집에 몸을 숨겼더랬다.

그날 새벽, 나는 학교 앞에 장총에 대검을 꽂은 살벌한 모습으로 군인들이 늘어서 학교를 막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떨리는 몸과 마음으로 조심조심 교문 앞을 갔다가 절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친구의 친구네 집 반 지하실로 숨어드는 것으로 보은을 기억에 담고 있다.

그로부터 한참 뒤, 바람결에 전해진 빛고을 광주의 처절함은 차라리 꾸며낸 이야기이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로부터 31년이 흐른 지금의 그날. 나는 정말이지 너무도 우연하게 학교 앞을 지나게 됐고, 라디오에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로 시작되는 님을 위한 행진곡 이 흘러 나왔으며 눈물은 저절로 흐르고 있었다.

그날 저녁, KBS-1TV는 저녁 뉴스를 서둘러 마친 뒤 광주, 그 성스러우면서도 아직도 눈물을 마다할 수 없는 서러운 묘역을 비추고 있었고, 함신익이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은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를 연주하고 있는데... 나는 그 연주를 도저히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역사는 그렇게 흐르고 흘러 어느새 31년이 지났다.

대통령은 올해 그날도 광주를 찾지 않았고, 2년이나 공식적으로 불리지 못했던 님을 위한 행진곡 은 그나마 올해 다시 서럽게 통곡으로 남기는 했다.

그리고는 그뿐. 다시 모든 것이 정상인 것처럼 되돌려진 시간. 평안한 일상을 읊어대고 있는 방송이 참으로 마뜩치 않다.

우리는 흔히 오욕의 역사에 대해서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것을 관용으로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가해자가 있을 경우 분명하게 사죄의 뜻을 밝혀야 하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당연함은 무시되고 그릇된 역사가 민주주의로 향하는 과정에서 파생될 수밖에 없는 일종의 통과의례 정도로 치부될 수 있다는 생각은 차라리 비극이다.

아직도 가슴에 피멍이 가시지 않고, 아직도 그 처절한 주검은 구천을 헤매고 있을 5월 그날의 영혼들.

그 현재진행형이 단순히 5·18 민주화운동 31주년 기념식이라는 이름만으로 다뤄지는 그 찰나의 방송 감각은 어쩐지 위태로워 보인다.

지금 방송에서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혹시 주말 뉴스시간을 앞당기고 그 시간대를 드라마로 채운 그 발상이 세상의 온갖 복잡다단한 문제와 그리고 그 속에서 생길 수도 있는 비판의식의 발로를 차단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나만의 엉뚱한 발상이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가혹하고 위태로운 현실보다는 이 아름다운 조국에서 환상적이고 그럴듯한 드라마의 세계에 빠져 고민할 건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길들여짐의 교묘한 계략은 아닌지.

그러나 어쩌랴. 리모컨은 아내의 손에 의해 조작되고 나는 채널 선택권이라는 민주적 절차에서 점차 멀어지는 주말이 되고 말았으니, 차라리 뉴스를 외면하는 편이 가정에 편안하게 길들여지는 일로 체념할 수밖에.

어떤 장관 후보자는 최근 3년 동안 무려 2,591만원을 소망교회에 헌금했고, 어떤 보수 단체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의 공인을 추진하고 있는 '5·18 원본 기록물'에 대해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아침 신문이 있어 차마 다행이 아닌가.

지난밤 TV를 끄고 대신했던 카세트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가, 그리고 길게 잠 못 이루고 흘렸던 눈물 그날 밤. 5월 그날이 다시 속절없이 지나고, 나는 습관처럼 보은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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