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와 석패율 제도
'나는 가수다'와 석패율 제도
  • 정규호 <부국장 보은-옥천>
  • 승인 2011.03.24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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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부국장 보은-옥천>

결국 김건모는 하차했다.

MBC문화방송이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옛 영화를 부활하기 위해 야심만만하게 편성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엉뚱하게 '공정사회' 논쟁이라는 쪽으로 번지는 럭비공의 신세가 되고 있다.

지난 일요일 결국 7명의 가수 중 한 명이 탈락해야만 되는 운명의 '나는 가수다'를 봤다.

가창력에 있어서는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최정상급 실력의 일곱 가수들의 열창은 그저 그런 주말 예능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신선한 충격이라는 기대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기대는 춤과 립싱크, 경박하고 노골적인 외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아이돌 중심의 한국 가요계의 현실을 노래 특유의 진정성으로 극복될 수 있는 장면전환을 꿈꾸게 하는 희망이기도 했다.

부지런하지 않아도 되는 주말 저녁, 나도 모르게 몰두하게 된 TV화면에는 국민가수라는 별호를 얻은 김건모가 피아노를 치며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열창했고, 그 노래는 진정 노래다운 감동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김건모의 탈락이라는 충격이었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동료 가수들은 재도전의 기회를 요구했다.

재도전은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소위 시청자들과의 약속이라는 잣대는 담당PD의 경질과 프로그램의 폐지마저 거론되는 초강수의 대응논리마저 생겨나고 있다.

기획의도가 어떻든지 간에 '나는 가수다'의 본질적인 문제는 노래를 생존게임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세상이 워낙 살벌하다 보니 노래든 뭐든 간에 일단 죽기 살기로 해야만 하는 현실은 서럽기 그지없다.

거기에 노래에 서열을 매긴다는 발상이라면 그나마 노래를 통해 찾을 수 있던 여유는 빠듯해지고, 사람은 더욱 각박해질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게다가 그 파문이 공정사회에 대한 정면도전이라는 허울로 뒤덮이는 상황은 그저 아연실색이지 않을 수 없다.

약속은 약속이니 준수돼야 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탓할 이유도 없고 탓할 수도 없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에 순위를 매기고 줄 세우기를 하는 것이 그야말로 공정사회의 원칙이며 변할 수 없는 진리여야 함은 여전히 의문스럽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 정치권이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에서 아깝게() 떨어진 후보자에게 비례대표의 자격을 통해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는 소위 '석패율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여야 모두 지역주의 극복을 대의명분으로 삼는다는 그럴듯한 포장을 하고 있는데, 과연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풍자를 뛰어넘는 일로 환영해야 하는 일인지 마땅치 않다.

혹시라도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패자부활전을 인정하면서 유권자가 선택한 일등 외에 2등에게도 일등과 신분상 전혀 차등이 없는 자격을 주게 되는 것 하나만으로도 공정사회는 벌써 물 건너가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다.

영국작가 다니엘 디포의 소설 '로빈슨크루소'에는 주인공 로빈슨크루소는 식인종으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원주민 프라이데이를 문명이라는 명분으로 교화하는 내용이 있다.

거기에는 비록 표류해서 고립돼 있는 신분이나 서구 문화가 몸에 밴 로빈슨크루소만 있고, 원주민 프라이데이의 문화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 시대상황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문화에는 차이만 있을 뿐 결코 차별이 이루어져서는 안 되며, 문화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

서바이벌 시장에 내몰린 가수와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에게도 선택과 원칙이 존중되어야 함은 마찬가지다.

공정사회의 잣대가 신분과 직업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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