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위원장 사퇴 왜 망설이나
정 위원장 사퇴 왜 망설이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1.03.21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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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영동>


'초과이익공유제'를 내놓은 후 정·재·관계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은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진정으로 사퇴를 작심했다면 빨리 실행에 옮기는 것이 좋다. 그의 제안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훌륭한 제안임에도 불구하고 여권 어느 구석으로부터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면, 그 스스로 푸념했듯이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니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다. 현실성도 효용성도 떨어지는 어설픈 아이디어라서 우군을 얻지 못한다면 무능에 책임지고 자리를 떠나야 한다.

우선 정 위원장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하고 있거나, 하려고 노력 중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익공유제가 치열한 찬반논란을 초래한 것은 그만큼 이 제안이 파격적이고 획기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미봉책으로는 개선 불가능한 것이 현재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일방적 관계이다. 반대론자들은 양자 간의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숙제는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해결하지 못했다. 현 정부도 지난해 중반부터 이 문제를 붙들고 실태조사를 하느니, 패널티를 주느니 하며 대기업에 엄포를 놓고 부산을 떨었지만 성과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였던 만큼 특단의 대책을 모색했을 터이고, 그 결과물이 '이익공유제'였던 셈이다. 당초 성장위에 부여됐던 과제가 대기업들이 박수로 환영할 얼치기 상생 방안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논란에 대한 정 위원장의 적극적인 대처도 사 줄만 했다. 그는 초과이익의 개념을 대기업들이 임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성과급으로 규정하고, 대상을 협력업체로 확대해 기술개발과 고용안정에 투자토록 하자며 이념논쟁을 비껴갔다. 외국의 사례도 소개하고, 대기업의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한 하도급 관행을 비판하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재계나 정치권 누구와도 만나 논쟁할 용의가 있다며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로서는 할 만큼 했고, 그런데도 여권 내 호응이 없으니 사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그의 '배수진'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논란의 본질은 서서히 사그러들고 '파워게임'이니 '고도의 정략'이니 하는 정치적 통박들이 세론의 중심을 치고 들어서는 양상이다.

우선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이 성장위의 예산을 증액하고 지원인력도 2배나 늘리겠다고 나선 대목부터가 그렇다. 정 위원장이 지경부가 그동안 성장위를 푸대접했다고 분개하긴 했지만, 이번 논란이 성장위의 예산과 인력 문제에서 촉발한 것은 아니다. 정 위원장이 사퇴를 언급한 것도 성장위에 대한 주무부처의 지원이 시원찮아서는 아니다.

최 장관은 이익공유제에 대해서 "애초에 틀린 개념으로 더 이상 얘기 안 했으면 좋겠다"고 거듭 일축했던 사람이다. 그것도 고등학교와 대학교 9년 선배이자, 전직 총리에게 말이다. 그런 그가 본질적인 논제는 접어두고 수억원대 예산에 또 다른 감투까지 제공하며 정 위원장 달래기에 나선 것은 그에 대한 또 다른 모욕이나 다름없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도 "더 이상 응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 위원장의 충정과 소신까지 부정하고 나섰다.

이제 정 위원장에게 남은 것은 꺼내 든 카드밖에 없는 것 같다. 이곳저곳 눈치나 보고 자리나 지키는 감투는 미련없이 버리는, 대한민국에서는 참으로 보기 어려운 선례를 남길수 있는 기회 말이다.

이미 정 위원장은 수도권과 지방의 동반성장을 주도할 세종시 폐기에 앞장섰다가 실패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은 것부터가 모순이다. 예산 팍팍 밀어줄 테니까 서로 입장 봐줘가면서 일하자는 모멸적인 거래를 강요받고 있는 그로서는 빨리 사퇴해서 자존심이라도 챙기는 것이 그나마 '남는 장사'다. 이 거래에 굴복하면 홍 최고위원의 말대로 응석받이를 자인하는 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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