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대재앙과 나카마 정신
日 대재앙과 나카마 정신
  • 남경훈 기자
  • 승인 2011.03.1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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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경훈 <편집부국장>

일본 언론은 이번 지진을 '게키진사이가이(激甚災害)'라고 했다. 태풍·지진·홍수·화재 등에 의한 극심한 재해라는 뜻이다. 강도 9.0의 지진이 높이 10m의 쓰나미를 불러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다. 이제는 원자로의 가동중단으로 핵공포까지 엄습하고 있다. 극심한 재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전대미문의 대재앙이란 단어가 더 피부로 와 닿는다.

그런데도 놀라운 건 일본인의 침착함과 질서의식이다.

땅을 치며 울부짖는 사람 하나, 약탈자와 새치기꾼 하나 볼 수 없다. 대학입시도 지진지역 6곳을 제외한 도쿄대 등 타 지역 대학은 시험 시간만 2시간 미뤘을 뿐이다. 같은 날 지바현에선 조류인플루엔자 닭들의 살처분까지 했다. 규슈 신모에 화산까지도 또 터졌지만 '치큐가 고와이(지구가 무섭다!)'라고 말하는 한 고등학교 교사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20시간만에 구출된 노파는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한다.

엄청난 자연의 재앙 속에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 약탈과 혼란이 나타나는 것을 흔히 봐왔다.

지난 2005년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무지막지한 자연의 힘에 상처입은 미국인들은 뉴올리언스 등지에서 발생한 인간의 행위에 또 한 번 상처입었다. 이곳에서는 약탈과 방화, 총격전, 성폭행 등 무법과 혼란의 상태가 지속됐다. 심지어 경찰까지 약탈행위에 가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주 방위군이 치안유지를 위해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번에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재앙을 맞았으면서도 놀랄 정도로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지진 피해지역의 편의점이나 쇼핑센터에서 물과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면서도 불평을 터뜨리는 이들을 보기 어렵다. 구호 물자도 서로 먼저 받겠다고 몰려드는 것도 없고 또 차례를 지켜 받아갈 때도 한사람이 꼭 하나씩만 받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부 영업을 하는 주유소에는 몇 시간씩 차량들이 줄을 서지만 끼어들기도 찾아볼 수 없고 제한 판매만 한다는 이유로 종업원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도 거의 없다.

여기에 전력 부족 현상이 심각해져 2차 대전 이후 처음 계획정전이 실시되고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소등을 하고 직장에서도 절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외신들은'인류정신의 진화를 보여주었다'는 찬사와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절제된 행동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걸까. 학자들은'나카마 의식'이라는 집단 의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 한다. 나카마(仲間)는 한패, 동료, 동아리, 같은 종류, 무리 라는 뜻이다.

즉 같은 나카마에서는 뛰어난 의리를 발휘하고 배려한다는 의미다. 엄청난 재난을 맞으면서 일본이라는 국가가 거대한 공동체이자 나카마로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같은 동료에 대한 절대적인 의리와 배려가 나타난 것이다. 또 일본 특유의 오랜 봉건체제를 거치면서 질서를 어기면 일본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독특한 사회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점도 들고 있다.

해석이야 여러가지지만 이번 대지진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준 침착한 대응은 어릴 때부터 체득한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교육과 재난에 대비한 꾸준한 교육과 훈련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그래서 일본을 도와야 하고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더욱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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