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된 슬픔과 따뜻한 위로
절제된 슬픔과 따뜻한 위로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1.03.1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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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일본에서 한동안 살다 온 주부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집 앞 놀이터에서 유치원 다닐 정도의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미끄럼틀 타는 아이들도 있었고 시소나 그네를 타고 노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 노는 모양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끄럼을 타기 위해 줄을 서던 아이들 중 덩치가 큰 녀석이 앞에 선 아이를 무시하고 먼저 올라가 미끄럼을 타는 것이다.

벤치에 앉아 아이들 노는 것을 구경하던 여자 중 한 명이 갑자기 일어서 새치기를 한 아이를 불러 세워 혼을 내고 있었다. 새치기한 아이의 엄마였다.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을 지적하며 꾸중하는 모습을 보며 어려서부터 남을 배려하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엄마는 줄을 섰던 아이 한 명 한 명 앞에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가서는 미안하다고 잘못을 빌게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밀치기도 하고 새치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야, 그러면 안 돼! 서로 양보하고 놀아야지!"하고 넘어가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정서다.

대지진과 원전 폭발의 대재앙으로 옆 동네 일본이 큰 혼란에 빠져 있다. 쓰나미의 엄청난 위력 앞에 안전 강국의 면모를 보였던 일본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깨닫는다.

연일 계속되는 일본발 속보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지만,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 외신은 "인류가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일본이 보여줬다. 일본의 시민의식은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일본의 철저한 대응과 국민의 질서의식에 놀라움을 표했다. 2010년 1월 아이티 지진 때 약탈과 폭력이 난무하던 모습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나카마(仲間, 동료) 의식'으로 타인에 대해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인의 국민성이 이번 사건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2009년 일본인 8명과 한국인 5명이 희생된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에서 보여 준 일본 유가족의 절제된 슬픔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당시 천안함 유족의 울부짖음을 보고 '격조 있게 슬퍼해야 한다고 동물처럼 울고불고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한 조현오 경찰청장의 망언은 우리를 분노케 했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먼저 생각하는 집단의식과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형적 특성상 위기에 대처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결과이다.

절제된 슬픔이든 땅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하던 가족과 생활터전을 잃은 슬픔은 똑같다. 만약에 일본과 같은 위기 상황이 우리에게 닥친다면 우리는 그것을 극복할 성숙된 문화의식을 가지고 있다. IMF 당시 금 모으기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서해안이 원유 누출로 오염됐을 때 팔을 걷어붙이고 기름띠를 제거하던 모습은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이 살아났다.

이웃집이 상을 당하면 웃음도 삼가고 농사일도 제쳐 놓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전통이다. 역사의 굴곡으로 앙금이 남아 있는 양국이지만 어려운 일을 보면 돕지 않고 못 배기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한류 스타들이 거금을 쾌척하고 일반시민이 자발적으로 성금 모금에 동참하는 모습은 죄는 미워해도 차마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우리네 고운 심정이 그대로 발현된다. 철없이 일본을 조롱하는 글에 그러면 안 된다고 꾸중하는 댓글이 줄을 잇는 것을 보면 함께 아파하고 진심으로 이웃을 걱정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인의 특성은 이해하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 우리 국민의 따뜻한 마음씨가 충격과 슬픔에 잠긴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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